연일 영하로 치닫는 기온만큼이나 재래시장도 썰렁하기는 마찬가지다. 좌판 위 생선은 꽁꽁 얼어붙고 과일은 폐기처분 되거나 살얼음 든 채 진열대에서 오종종 떨고 있다. 천막을 치고 난로를 피워보지만 영하로 치닫는 수은주를 감당하기는 역부족이다.
그래도 점포에 입점한 상인들은 피해가 덜하다. 골목에 쪼그리고 앉아 얼마 안 되는 푸성귀와 양념 등을 놓고 좀처럼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는 노점상의 모습이 눈물겹다. 꽁꽁 얼어 제대로 움직여지지도 않는 곱은 손으로 쪽파를 까고 나물을 다듬으면서 “애기엄마 많이 줄게 이것 좀 사가. 너무 추워. 얼른 팔고 들어가야지 더 있다가는 얼어 죽겠어” 하며 지나치는 행인들을 불러보지만 잔뜩 웅크린 사람들은 발걸음을 재촉할 뿐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김 할머니는 30년 넘게 노점을 하고 있다. 메리야스 가게 건물 담장 밑에서 뿌리채소와 마늘 등 잡곡을 판다. 노인은 노점으로 자식들 공부시켜 시집 장가보내고 이제 영감님 하고 둘만 먹고 살면 되는데 장사가 그전만 못해 종일 앉아 있어도 몇 만원 벌이도 어렵다며 갈수록 사는 것이 힘들다고 푸념하신다. 물건이 믿을 만하고 바로 손질해 놓은 것들이라 싱싱하고 맛 또한 좋아 10년 넘게 단골이다. 몇 마디 덕담과 한 줌 더 얹어주는 덤이 좋아 자주 이용하게 된다. 물가는 많이 올랐지만 그래도 재래시장이 인심도 넉넉하고 먹거리도 푸짐하다.
재래시장은 흥정하고 에누리 깎고 덤 조금 더 받는 재미가 쏠쏠하다. 사는 것이 힘들고 지칠 때 재래시장을 한 바퀴 돌아보면 위안을 받게 된다. 악조건 속에서도 살아보겠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보면 나의 불평과 불만이 얼마나 사치이고 오만이었는가를 반성하게 된다. 천태만상의 살아가는 모습에서 희망을 보고 삶의 진정성을 배우게 된다.
하지만 대형마트 입점 등으로 재래시장을 찾는 사람들이 줄어들자 시장도 변화가 생겼다. 무질서와 어떤 점포는 물건을 골목까지 적재하여 지나가기 힘든 곳도 있고 불친절한 곳이 있는가 하면 위생관리가 엉망인 곳도 간혹 있어 눈살을 찌푸리기도 했는데 이제는 많이 달라졌다.
시장에 지붕을 씌우고 각 점포마다 깔끔하게 단장을 하는 등 손님을 불러들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공영주차장을 만들고 점포에서 무료주차권을 발행하여 고객의 편의를 살피는가 하면 타임세일 및 사은품 행사 등으로 대형마트에 뺏긴 고객을 불러들이기에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재래시장이 살아야 지역경제가 살아나고, 지역경제가 활성화 되어야 모두가 잘 살 수 있다며 재래시장을 이용해 줄 것을 홍보하고 있지만 아직은 역부족인 것 같다. 유명 브랜드 제과점이 군데군데 생기면서 몇 십 년 전부터 빵을 만들던 사람들이 문을 닫고, 편의점이 잇달아 생기면서 동네 슈퍼는 무너진 지 오래다. 하지만 우리의 생존권은 우리가 지켜야 한다. 재래시장으로 와달라고 호소소하기에 앞서 고객 스스로가 재래시장을 찾게 만들어야 한다. 품질 좋은 제품과 서비스로 승부를 걸고 시장보기에 불편함이 없도록 하여 대형마트에 빼앗긴 상권을 되찾아야 한다. 예전처럼 인파로 북적이는 활기찬 시장을 상상하는 일은 즐겁다.
▲한국문인협회 회원 ▲경남신문신춘문예 시 당선 ▲안견문학상 대상 ▲시집-푸른 상처들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