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 사이 우리는 도시에서 자투리땅을 이용해 텃밭을 가꾸고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 주말농장을 찾는 사람들, 즉 도시농부를 보는 게 익숙해졌다. 각 지방자치단체의 적극적인 지원 속에서 도시농업은 붐을 타고 있으며 ‘도시농부’라는 용어조차 이젠 생소하지가 않다.
이른 봄 작은 씨앗을 직접 뿌리고 주말마다 아이들 손을 잡고 나와서는 정성을 다해 물과 양분을 주며 우리는 농사짓는 일에 제법 재미를 들였다. 아이들도 고사리 손으로 흙을 만지며 다양한 채소를 기르며 눈으로 보고 또 열심히 뛰어놀며 자연스레 농업을 접하게 된다. 이 자체가 현장학습이고 산경험이다. 이렇게 봄, 여름, 가을 우리 가족의 행복한 터전이 된 주말농장,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삶의 활력소이자 비타민 같은 존재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하순에 둘러본 주말농장과 도시텃밭의 모습은 황량함 그 자체였다. 검은색 비닐이 지저분하게 날리고 있고 농사지으면서 이용했던 지줏대, 호스, 비료봉투, 비닐끈 등 각종 농사용 폐자재가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었고, 수확하고 남은 작물의 뿌리나 노화된 잎들은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너무나도 안타까운 현실을 본 것이다. 한 마디로 농심은 없었다. 그냥 채소만 길러먹으면 된다는 도시농부들의 이기를 들여다보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반면, 농촌농부들을 보자. 무엇이 진정한 농심인지를 마음 깊이 느끼게 된다. 농부는 가을걷이가 끝나면 논밭을 깨끗이 정리한다. 썩지 않는 폐비닐이나 병, 오물을 수거하고 수확 후 잔재물은 퇴비화시켜 다시 유기물로 되돌려준다. 또 볏짚은 잘게 뿌려서 쟁기로 한 번 갈아 겨울 동안 퇴비화가 진행되도록 하며, 그것도 모자라 녹비작물을 파종해 땅심을 높이기 위해 열심이다. 농부는 우리 먹거리 생산의 기반인 흙을 제 몸처럼 돌본다. 그래서 ‘농심은 천심이다’라는 말이 있는 것이다.
2000년대 후반부터 늘기 시작한 도시농부는 이제 100만에 육박한 것으로 추정된다. 서울시내 도시텃밭만 해도 411개소(2012년 6월 현재)로, 미국 뉴욕(636개소)과도 견줄 만할 정도의 수준이 됐다. 이러한 추세라면 지속적으로 빠른 속도로 증가돼 우리나라에서도 도시농업은 생활화 될 것으로 예상된다.
도시농업은 농촌농업과 달리 농사짓는 목적이 돈을 벌기 위한 게 아님을 알고 있을 것이다. 내 손으로 직접 우리 가족 먹을거리를 생산한다는 자긍심도 있지만 도시민들이 농사활동을 통해 농업을 이해하고, 식물을 가꾸면서 생명에 대한 존엄성을 키우며 흙과 자연에 대한 고마움을 깨달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물론 도시농업은 어린이교육, 어르신들의 건강관리, 도시 녹색공간 확충, 에너지 절감 등 사회적, 환경적으로도 다양한 가치가 있다. 그래서 이젠 도시농부들도 자연의 순환을 이해하고 흙에 감사할 줄 알면서 지속가능한 좋은 환경이 되도록 농업인들로부터 배울 건 배우며 진정한 농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농심을 갖는 게 그리 거창하고 어려운 건 아니다. 농작물이 자라는 흙을 내가 기르고 양육해야 할 가족의 일원으로 생각하면 된다. 가족에게 감사하듯이 흙에 감사하고, 자녀의 역량을 키워가듯이 흙이 힘 있게 살아있도록 가꿔주면 된다.
농사짓기가 끝났다고 겨울 동안 가보지 않고 방치해 두는 건 너무 이기적인 행동이다. 한 해 동안 수고해준 흙이 건강하게 쉴 수 있도록 보듬어주는 마음으로 정리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즉, 폐비닐과 각종 농사자재들을 수거하고 뿌리나 잎 등 유기화가 가능한 것들은 골고루 뿌려 뒤집어 준다. 또는 유채나 자운영 같은 녹비작물을 뿌려 땅심을 높여줄 수도 있고, 보리를 심어 겨울에도 녹색공간으로 유지해 갈 수 있게 신경 쓰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도시농업이 활성화되면서 농업의 역할이 더욱 커지고 있는 요즈음, 농업은 그냥 단순하게 국민의 먹을거리만 생산하는 산업이 아니라는 점을 깊게 인식했으면 한다.
우리는 이 땅에 계속 농사지으며 살아야 하며, 흙은 자손 대대로 가꾸고 지켜가야 할 인간의 생명기반이기 때문이다. 농업은 생명이다. 생명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소중한 것으로, 인간이 지켜가야 할 가장 근본적인 것이다. 농심은 천심이다. 2013년 도시농부들의 건강한 농심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