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 서점조합이 ‘인문학 도시’를 자랑하는 시를 향해 큰 불만을 쏟아냈다. 서점은 줄줄이 고사하고 있는데, 시는 무대책으로 일관하면서 ‘인문학 도시’ 이미지에만 집착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서점조합의 항변과 비판에 상당한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수원시 서점조합의 회원은 지난 10여 년 사이 10분의 1로 줄었다. 2000년 150곳이었으나 지금은 15곳뿐이다. 비회원 서점과 헌 책방 등을 합해야 수원시내 서점이 30곳에 불과하다. 인구가 115만을 넘는 큰 도시에 서점이 고작 30곳이라면 말이 안 된다. 이러면서 인문학 도시입네 자처하기엔 창피한 노릇이다.
서점조합은 이 같은 실정인데도 시가 독서문화축제, 인문학 명사 특강 등 이미지 치장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고 꼬집는다. 서점조합의 질타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바로 이 대목이다. 문화생태계에 대한 세심한 고려와 배려 없이 추진되는 ‘인문학 도시’는 빈 수레에 지나지 않는다. 서점은 문화생태계 전체를 떠받치는 기초 중의 기초다. 독서와 책 구입 관행이 아무리 인터넷 중심으로 변했다 해도, 서점의 숫자는 여전히 한 도시의 문화 수준을 보여주는 바로미터에 해당한다. 이를 의식조차 못하면 인문학 도시를 운운할 자격조차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수원시는 2014년까지 인문학 도시 인프라를 갖추기 위해 수백억원을 투입한다는 계획을 세워 추진 중이다. 또한 수원시평생학습관 등을 중심으로 다양한 인문학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우리는 이러한 예산과 프로그램이 모두 헛되이 낭비된다고 보지는 않는다. 인문학 도시는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 없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더 많은 예산이 장기적으로 투입될 필요성이 있다는 점도 인정한다. 그러나 인문학의 저변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이에 입각한 정책을 펼쳐 나가지 않으면, 시의 의도와는 달리 인문학 도시의 허울을 쓴 반인문학적 행태만 활개칠 것이다.
서점조합의 항변에 대해 시 관계자는 “서점이 자영업이기 때문에 별다른 대책을 세우기 어렵다”고 답했다. 서점이 고사하는 현실이 안타깝지만 마땅한 정책 수단을 찾기 어렵다는 고충이 이해는 간다. 변화하는 현실에 맞는 독서 진흥 방식도 시 관계자들이 고민하고 있으리라 본다. 문제는 지원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문화생태계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가이며, 문화생태계를 건강하게 발전시키기 위해 저변의 목소리에 진정으로 귀를 기울이고 있는가다. 문화생태계는 더 많은 소통, 그 소통의 과정에서 형성되는 창의력 및 아이디어를 통해 풍부해진다. 문화생태계를 풍부하게 만들어가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인문학 도시를 만드는 길이라고 우리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