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 슬로푸드 국제대회 계획안이 확정됐다. 대회조직위원회가 지난 27일 발표한 내용을 보면 오는 10월 1일부터 6일까지 남양주시 이패동과 조안면 일원에서 아시아와 오세아니아 40여 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1천여 가지의 음식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한다. 아시아 구스토(Asia Gusto)라 불리는 이 대회의 주제는 ‘생산은 유기농 밥상은 슬로푸드’와 ‘슬로푸드 맛으로 바꾸는 세상’으로 정해졌다.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열리는 이 대회가 성공적으로 치러지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삶의 지혜가 담긴 맛으로 세상을 바꾸겠다는 취지를 높이 사며, 현란한 속도를 자랑하는 현대문명의 병폐를 바로잡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갖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대회가 ‘이색적인 세계 맛 대회’로 전락하지 않도록 지금부터 치열하게 고민하고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 슬로푸드 운동은 미각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오히려 미각을 존중하고 미각을 향상시킬 때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운동의 정신에 충실하지 않으면 ‘속도의 노예상황’에서 벗어나기는커녕 오프라인으로 옮겨놓은 TV 맛 프로그램 종합선물세트 수준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상존한다. 대회 계획안을 살펴볼 때 에듀케이션관이라든가 사라질 위기의 음식 전시 등 취지를 살리는 행사들이 다수 눈에 띄어 다행스럽다.
하지만 국내에서 치러지는 국제행사들의 상황을 감안하면, 아시아 구스토 역시 행사를 위한 행사에 그칠 위험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놀라운 맛의 향연’이 강조될수록 그 위험은 커진다. 아울러 대회조직위원회가 돈으로 환산한 지역경제 유발효과, 국가경제 파급효과, 국가 사회적 비용절감을 밝힌 점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슬로푸드 운동에 낯선 시민들에게 대회의 당위성을 설득하기 위한 추정치라는 점은 이해하나 대회의 의미를 경제적 효과와 효율성로 환산하는 것은 대회 취지와 어울리지 않는다. 슬로푸드 운동은 생산성의 이름으로 우리 삶의 존재방식을 왜곡하고, 환경과 경관을 파괴하는 문명을 인간적 방식으로 되돌리자는 운동이다.
조직위는 대회 자체보다 대회 전과 대회 후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꼭 인식해 주기 바란다. 슬로푸드에 대한 시민의 공감 확산 없이는 성공을 장담할 수 없다. 생물다양성 보호, 지역 미각의 보호, 지역 전통음식의 보전, 유전자조작 반대,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표현되는 천박한 노동문화 개선 등 슬로푸드 정신과 직결되는 운동이 기획 단계에서부터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대회 후에도 이러한 노력을 어떻게 지속적으로 넓혀나갈 것인지 심사숙고해 주기를 당부한다. 밤새 눈 내린 길을 조심스럽게 처음 걷는 심정으로 준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