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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피도 눈물도 없는…

 

실로 악랄한 전쟁이다.

적군의 얼굴도 모르고 실체도 없는 그와의 전쟁을 준비하고 그 전쟁 치르느라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매일매일 좌절하고 있는가. 도대체 누가 이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은 전쟁의 불바다로 그들을 던져 넣고 허우적이게 하였단 말인가.

동부 이촌동 Y중학교 앞, H대기업 신입·인턴사원 모집 시험을 치르기 위해 구름 떼처럼 몰려든 그들은 오늘 또 한 번 치열한 각개전투를 치르게 될 것이다.

차라리 총칼에 다친 상처라면 상처라도 내보여 엄살이라도 떨어 볼 텐데. 속으로만 멍들어가는 그들의 상처를 누가 읽어낼 수 있을까. 새로운 세상으로의 입문을 앞둔 떨림이나 기대보다 또 한 번의 전쟁을 맞아야 한다는 오기에 가까운 그들의 씁쓸한 표정이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노란 개나리 뽀족뽀족한 그 발랄한 꽃잎처럼 해맑게 초등학교를 입학할 때는 그저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라고 했는데. 아직도 그 훌륭한 사람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그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 무던히도 참고 준비하고 또 참고 준비했는데. 대학은 in서울 in서울 노래를 하길래 in서울이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한 지름길인 줄 알고 in서울도 했고, 어학연수는 필수 스펙이라길래 부모님 밥줄 새끼 꼬듯 꼬아 맨 돈으로 천리 먼 이국까지 어학연수 갔다 오고, 토익·토익 스피킹 레벨 기를 쓰고 올려도 봤는데, 앞을 턱하니 막아서는 입사 전투 대참사라니.

폭풍 신세한탄 쏟아놓던 딸아이 서른여섯 번째 입사를 위한 자기소개서를 쓰던 달, 살고 싶지 않다며 펑펑 우는 그 아이 손을 잡고 가슴이 아파서, 답답해서, 앞이 캄캄해서 같이 울어줄 수밖에 없었다.

진작부터 한 곳을 보지 말았어야 했다. 각자의 생각대로 끌림대로 재능대로 자기 색깔을 만들어냈어야 했다. 똑같은 색깔로는 어떤 그림도 그려지지 않는다는 걸 좀 더 일찍 알았어야 했다. 한 색깔을 요구하고 막바지에 와서 다른 색깔을 내놓으라는 그들의 억지를 미리부터 눈치 챘어야 했다. 소 잃고 외양간이라도 고쳐보는 뒤늦게 하는 후회는 늘 가슴을 더 쓰리게 할 뿐이다.

남들 다 가는 학원 보내지 않고도 환하게 웃을 줄 아는 주관. 남들 다 가는 대학을 고집하지 않고도 미래를 계획할 줄 아는 여유. 이 학원 저 학원 밀어 넣고 일 년 열두 달 아이 주변을 맴도는 헬리콥터 맘을 과감히 포기할 줄 아는 용기. 남들의 시선 따위 의식하지 않고 진심으로 본인이 즐겁게 할 수 있는 그 적성을 찾아줄 줄 아는 진정한 조력자. 그것이야말로 자기 색깔 드러내며 자신감 있게 웃을 수 있는 그 화사한 결실을 위한 첫째 조건이 아니었을까.

전쟁의 한복판으로 던져진 딸아이는 아직도 가슴 꽁꽁 얼어 살얼음판인데 꽃샘추위 핑계를 대면서도 봄꽃은 흐드러지게 피고야 말았다. 그나마 남향 틈으로 여린 봄 햇살 비추기도 하니 가슴팍 그 얼음 조금씩, 조금씩이라도 녹아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딸아이가 다시 서른일곱 번째 자기소개서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피도 눈물도 없는 이 악랄한 전쟁의 끝을 낼 수 있도록, 햇살 비추는 그쪽으로 다시 한 번 마음 창 활짝 열어놓아야겠다.

▲에세이 문예 등단 ▲한국 에세이 작가연대 회원 ▲평택문협 회원 ▲현 독서토론논술 문화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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