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 기온이 30도까지 치솟은 날, 서울 강동구 성내동 드림팩토리 건물 지하 연습실 계단을 내려가자 임재범이 어둠침침한 공간에서 담배 한 개비를 물고 있었다.
지난 2011년 MBC TV ‘나는 가수다’에서 ‘비상’을 부를 때의 날카로운 눈빛은 다소 부드러워진 듯 했다. 셔츠에 청바지 차림도 편안해보였다.
오랜만에 이곳에서 만난 임재범은 공연 연습이 한창이었다.
그는 오는 7월 5∼6일 연세대학교 대강당을 시작으로 가을까지 대전, 대구, 부산, 창원 등 10개 도시를 돌며 ‘걷다보면’이란 타이틀로 공연한다. 전국투어가 끝나면 국내 활동을 잠시 멈추고 앨범 작업과 해외 공연에 전념할 계획이다.
브라운관에서 벗어나 공연으로 팬들과 만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그는 “TV에 출연하면 질문이 꼭 과거로 돌아갔다”며 “‘방송 펑크를 왜 냈느냐’ ‘왜 잠수를 타고 오대산에 들어갔느냐’ 등을 물었고 이 내용이 방송되면 인터넷에 기사가 죽 났다. 나름 나쁜 버릇, 좋지 않았던 일을 잊고 과거에서 벗어나 다른 모습으로 살려고 하는데 발목이 잡히더라. 상처가 되고 속상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공연에선 관객들의 눈망울에서 새로운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다. 받은 만큼 관객들의 마음을 온전히 위로해주고 싶어 공연 제목부터 힐링의 의미를 담았다. 때론 복잡한 심경들도 ‘걷다보면’ 해소되듯이 자신의 노래로 일상에 지친 사람들을 안아주겠다는 취지다.
유독 그의 노래에 마음의 치유를 받았다는 팬 중엔 외로운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같은 노래도 그가 부르면 유독 더 슬프고 더 따뜻하게 느껴진 덕이다.
2011년 체조경기장 공연에서 록 뮤지션으로서 정체성을 보여줬다면 이번엔 ‘사랑’ ‘일탈’ ‘잊고 산 소중한 것들’ 등으로 주제를 나누고 연극과 뮤지컬 적인 요소를 가미할 예정이다. 팬들이 듣고 싶은 노래를 받아 레퍼토리에 더하고 록과 어쿠스틱한 곡들을 고루 선보일 예정이다.
그는 전국투어를 마치면 다음 스텝을 밟기 위해 쉼없이 내달려온 걸음을 잠시 늦출 예정이다. 그러나 시간을 그냥 흘려보낼 생각은 없다.
“시간을 갖고 7집을 만들 생각이에요. 다음 공연을 하려면 새로운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데 임무를 다하지 못한 것 같아 죄스럽거든요. 미국, 일본, 중국 등 안 가본 곳에서 공연도 좀 해보고 새로운 걸 섭취하려고요.”
새 앨범에 대한 고민은 꽤 깊어 보였다. 1986년 시나위 보컬로 데뷔해 외인부대, 아시아나 등의 록그룹을 거친 그의 음악 뿌리는 록이지만 대중과의 눈높이를 맞춰야 하니 간극을 메우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는 “아직 난 어떻게 대중에게 부응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이젠 대중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소화 안 되는 뼈다귀만 내놓고 알아서 먹으라고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록의 매력을 설명할 때는 톤이 한층 높아졌다.
“록이 정말 맛있거든요. 삶이 답답할 때 휴가 가서 엄청나게 시원한 폭포수에 몸을 담근 느낌, 땀을 뻘뻘 흘리며 매운 짬뽕을 먹을 때의 짜릿함과 같아요. 매운 음식은 다신 안 먹겠다면서도 며칠 뒤 다시 먹고 싶어지잖아요. 록을 들으면 기운이 빠졌다가도 힘이 나요”
그러나 젊은 날 록을 접하며 심리적인 기복이 커 방황도 했다. 노래를 하겠다며 ‘백판’(불법 복제 LP)을 들고 다니던 시절, 파랑새소극장에서 들국화의 공연을 보고 ‘노래하면 안되겠구나’란 허탈감도 느꼈고 프로의 세계에 입문해선 딥 퍼플, 주다스 프리스트와 동격이라고 착각한 시기도 있다. 그러나 록의 본고장인 영국으로 건너가 직접 부딪히며 절망했고 로커 출신으로 발라드를 부를 땐 자멸감을 느낀 적도 있다.
그는 “지금도 난 록을 지켜가는 후배들에게 배신자 아닌 배신자”라며 “이런 험난한 길이 싫어 딸이 음악을 한다면 뜯어말릴 것이다. 난 음악을 하면서 성격이 예민해지고 영혼이 피폐해졌다. 물론 지금은 치유가 많이 됐다”고 웃었다.
그러나 이 과정은 그가 ‘메이드 바이(made by) 임재범’ 음악에 도전하는 자양분임에 틀림없다.
“전 제가 살아온 시대에 감사해요. 샘 쿡, 오티스 레딩, 지미 헨드릭스의 음악을 접할 수 있었으니까요. 또 요즘 세대의 노래들도 CD를 한꺼번에 사서 파악해요. 제 몸속에 저장된 것들을 꺼내 임재범만의 냄새가 나는 음악에 도전해야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