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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돈의 맛

 

젊은 육체를 탐한 재벌과 그들의 재력을 탐한 젊음이 공모한 더티 판타지(Dirty fantasy). 재벌가의 뒷 이야기를 파격적으로 그린 영화 ‘하녀(2010)’로 전도연을 칸의 여왕에 등극시킨 임상수 감독이 지난해 세상에 던진 영화 ‘돈의 맛’에 대한 감상이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씁쓸했던 기억이 아직도 오롯하다. 재벌에 대한 환상따위야 이미 개에게 줘 버린지 오래지만, 탐욕의 정점이 육체를 포함한 쾌락에 집중되는 구도는 아니올씨다, 였다. 욕망을 미학의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이라는 기대? ‘에라이.’

‘돈의 맛’의 인물 대강은 이렇다.

대한민국을 돈으로 지배하는 재벌 백씨 집안의 탐욕스러운 안주인 ‘금옥(윤여정 扮)’과 돈에 중독돼 살아온 자신의 삶을 모욕적으로 느끼는 그녀의 남편 ‘윤회장(백윤식 扮)’. 백씨 집안의 은밀한 뒷일을 도맡아 하며 돈 맛을 알아가는 비서 ‘영작(김강우 扮)’.

감독은 이들이 벌이는 돈에 의한, 돈을 위한, 돈의 인생을 권력과 욕정, 집착 등을 섞어 여러 겹의 데칼코마니로 그려냈다. 지루하게. 그 과정에 귀에 박히는 대사들이 있었으니, 이렇다.

“정치하는 것들, 판사, 검사, 공무원, 기자, 교수 나부랭이들…돈 달라는 것들 투성이야.(백금옥)”

“돈, 펑펑 썼지 원없이…근데 그게 그렇게 모욕적이더라구.(윤회장)”

그런데 무엇보다 압권은 윤회장, 더 정확히 백씨 재벌가의 금고가 열리는 순간이었다. 커다란 방 한가득 골드바와 5만원권 현금이 가득차 있었으니 말이다. 알리바바의 보물 동굴이 그에 비할까. 찬란한 황금에 눈이 돌아간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알것 같았던 순간이다.

골드바와 고액권의 현찰은 ‘음지에 거하고 양지를 창조하는’ 도깨비 방망이다. 아니, ‘이것저것 끌어모아 부의 성을 쌓는’ 구리구리 박사의 요술 재료일지도 모른다. 예나 지금이나 이 두 품목은 어두운 곳에 보관된다. 언제 어느때 요긴하게 쓰여질지 모르는 신비주의의 극치이기 때문에 암흑을 지향하나 보다, 정도만 생각하고 말련다.

그런 때문일까.

박근혜 정부가 지하경제 양성화에 강한 의지를 보이자 상대적으로 금고에 숨겨 놓기 쉬운 골드바와 5만원권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단다.

지난 4월 말 시중에 풀린 5만원권은 35조5천299억원으로 올 들어 4개월 동안 3조7천634억원 증가한 수치란다. 지난해 같은 기간 1조9천265억원에 비하면 거의 두배 수준. 지난 2009년 6월, 세상에 처음 나온 5만원권이 전체 화폐 발행 잔액 가운데 차지하는 비중이 올 4월 65.9%로 급상승했단다. 매력이 무엇인지, 나같은 범인(凡人)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한국은행조차 증가 폭이 크다는 반응과 함께 정확한 이유를 모른다고 하니, 오죽하겠는가.

고액의 현금과 함께 지하경제의 표본이자 일부 부유층의 재산 은닉 수단으로 불리는 금 거래도 증가세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골드바 등 금 실물의 매력은 이렇다. 현실적으로 과세가 어렵고 매매차익에 대한 양도소득세 부과 대상에서 제외되는 등 세제도 미비한 상태다. 이 어찌 부유층이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곱씹어도 매력적이다.

지난 3월부터 골드바를 판매한 국민은행은 월 200㎏ 정도가 판매된다고 밝혔다. 이미 오래전 부터 골드바를 판매했던 신한은행은 한 술 더떠 올들어 금 판매량이 월 500㎏ 정도라고 당당히 공개했다. 그러나 증가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공개하기 어렵다고 했다.

왜? 부유층인 PB(Pravate Banking) 고객들은 자신들과 관련된 정보 노출을 꺼리시니까요. 신비롭잖아요. 탐사보도라는 철없는 아이들의 레이더에 걸리지만 않으면 말이예요. 연일 터지는 재벌들의 조세피난처 의혹을 보면서, 한때나마 저들에게 ‘노블리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기대했던 저렴한 마음이 한심스러웠다.

임순례 감독의 영화 ‘남쪽으로 튀어’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너희는 너무 쉽게 믿어.”

그래, 난 너무 쉽게 믿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아직도 믿고 있는지 모른다. ‘흑전백전(黑錢白錢)’이 아니라 ‘좋은 돈이 좋은 일을 한다(善錢之善事)’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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