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는 실낙원에 나오는 사탄의 궁전(pandemonium)을 복마전이라는 의미로 사용한다. 문호 존 밀턴이 쓴 실낙원(失樂園)에서 지옥에 떨어진 사탄이 모든 악마들을 모아 천국과 싸울 준비를 하는데, 악마들을 모으기 위해 건설한 사탄의 궁전을 영국사람들은 복마전이라 부른다는 것이다. 이처럼 마귀가 숨어있는 집이나 소굴이 복마전(伏魔殿)이다. 또 다른 의미로는 <남몰래 나쁜 일을 꾀하는 무리들이 모이는 곳>이다. 마굴(魔窟)도 같은 뜻이다.
최근까지 홍콩에는 이 같은 곳이 실제 존재했다. 20세기 마지막 무법지라 불렸던 구룡성채(九龍城寨)가 그곳이다. 구룡채 성(城)으로 부르기도 했던 이곳은 청나라 관청이 있던 곳이다. 그래서 아편전쟁 이후 영국이 홍콩을 지배하게 됐으나 이곳만은 중국 관할지역으로 남아 있었다. 면적은 불과 0.03㎢이었지만 홍콩 내 형식상 중국 영토였다. 그리고 지역의 특수성 때문에 양국 모두의 주권이 미치지 못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중국 내전이 일자 많은 난민들이 홍콩으로 밀려들어오게 되고, 사실상의 주권 공백지대인 이곳으로 유입됐다. 그리고 30여년 만에 길이 210m, 폭 120m, 8천여평 구역 안에 5만여명이 사는 세계 최고의 인구밀집지역이 됐다. 구역 내 건물들은 15층 높이의 소규모 아파트가 한 데 뭉쳐있는, 마치 거대한 콘크리트 덩어리 모양으로 형성됐다. 그리고 미로 같은 그 안에서는 매일 매일 살인, 매춘, 마약, 도박 등 세상의 모든 범죄가 끊이질 않았다. 대낮에도 어두침침해 마치 악마가 튀어나올 것 같다 해서 마계(魔界)라고도 불렀다.
구룡성채는 1993년 철거됐고, 지금은 공원이 들어서 있다. 중국 4대 기서(奇書) 수호지에는 복마전으로 유래된 말이 나온다. 홍신이라는 사람이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복마지전(伏魔之殿)이라고 쓰인 한 전각의 비석을 뽑아버리자 비석 아래에 갇혀 있던 108 마왕이 세상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는 것이다.
소명의식을 잃고 금전적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비리의 복마전(伏魔電)이 되어버린 원전(原電)을 보며 구룡성채나 사탄의 궁전이 생각나는 건 왜일까. 다른 한편으론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국민들만 불쌍하다는 생각도 든다. 블랙아웃 된다면 단전 1순위가 아파트와 주택 등 일반 가정이라니 말이다.
정준성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