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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수일 칼럼]독일의 동방정책 50년

 

독일 바이에른 주의 수도인 뮌헨에서 서남쪽으로 1시간 정도 가면 독일에서 가장 높은 산이 있는 독일 알프스가 시작됩니다. 한 여름에도 정상에 눈이 쌓여있고 큰 호수가 있어 휴양지로 잘 알려진 아주 작은 툿칭이라는 시골마을이 있습니다. 여기에 독일 개신교 아카데미라는 작은 회의장이 있는데 이곳에서 지난 5월 말, 한신대학교 ‘평화와 공공성 센터’와 미국의 시라큐스 대학, 독일의 ‘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 등이 공동으로 주최한 동북아시아 평화와 한반도문제에 대한 두 번째 국제학술모임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 모임은 작년 4월 뉴욕에서 열렸고, 남과 북, 미국, 중국, 일본, 독일 대표들이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두 번째 모임에는 유감스럽게도 북한에서 아무도 올 수 없었습니다. 박근혜 정부 후 남북관계가 이전보다 전향적으로 진전되리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개성공단 폐쇄 이후, 그나마 물꼬를 틀 것으로 기대된 남북당국 간 회담도 준비단계에서 결렬되었습니다. 이른바 격(格)이 문제된 것이지요. 바로잡을 ‘격’은 사전적으로 ‘주위 환경이나 형편에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분수나 품위’를 의미합니다. 회담에 임하는 양국 대표들의 신분이 비슷해야 하고, 형식이 내용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생각이 국가 간 외교관계에서는 타당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남북관계라는 특수한 관계에서는 격보다 실리를 추구하는 실사구시 정신이 더 앞서야 하는 것이 아닌지 생각했습니다.

한반도의 위기상황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두 번째 동북아시아 평화 학술모임을 굳이 독일 남부의 아주 작은 시골 마을에 있는 ‘툿칭 개신교 아카데미’에서 개최하게 된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부터 꼭 50년 전, 이곳에서 독일의 그 유명한 동방정책이 당시 베를린 시장인 빌리 브란트 수상의 대변인이던 에곤 바에 의해 입안되고 선언되었기 때문입니다(1963년 7월 15일). 에곤 바는 이른바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의 선구자이자 이론적 설계자였습니다. 서독의 ‘동방정책’은 냉전체제로 분단된 동독과의 관계만이 아니라 소련, 폴란드 등 동구 공산권 국가들과의 관계를 화해와 협력의 관계로 개선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동방정책의 핵심은 ‘접근을 통한 변화’(Wandel durch Annaeherung)와 ‘작은 발걸음 정책’(Politik der kleinen Schritte)에 있었습니다. 어떤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서로 만나 대화하고, 실현가능한 작은 일부터 실천해나간다는 아주 현실적인 이 정책은 마침내 모스크바 조약, 바르샤바 조약, 교통조약, 동서독 기본조약 등 더 큰 결실을 거두는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반발은 독일 안팎에서 제기되었습니다. 빌리 브란트는 불신임 파동을 겪었고, 에곤 바는 공산주의자로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미국도 독일의 동방정책에 불만을 표했습니다. 1970년 미국을 방문한 에곤 바는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던 헨리 키신저에게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자신은 키신저에게 조언을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통보하러 온 거라고. 그리고 독일의 동방정책은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독일의 동방정책이 그 진정성을 인정받게 된 데는 빌리 브란트 수상의 인간적 면모도 결정적이었습니다. 1970년 12월 폴란드 바르샤바의 유대인 게토를 방문한 날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브란트는 추모비 앞에 헌화한 후 비에 젖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사과했습니다. 처음부터 계획된 일도 아니었고,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나치에 저항한 레지스탕스였고, 평생을 사회주의자로 살아온 브란트, 사과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 독일을 대신하여 무릎 꿇고 사과한 것입니다. 세계는 독일을 용서했고, 독일은 다시 인류공동체 안에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소련 공산당 서기장 브레즈네프는 ‘독일보다 독일 총리를 더 신뢰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브란트 전 총리가 바르샤바 유대인 게토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은 지 꼭 19년 만에, 동방정책이 설계된 지 26년 만에 독일은 통일되었습니다. 그리고 독일은 다시 세계 최강의 국가 가운데 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68년,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60년이 되는 해를 보내고 있지만 평화통일의 길은 요원해보입니다. 독일의 동방정책은 외교적 격이 아니라 지도자의 진정성이 세계를 감동시키고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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