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간?/백무산
여름낮 한시간 동안 나무는
얼마나 많은 일을 할까
겨울밤 한시간 동안 나무는
얼마나 깊어질까
그걸 왜 한시간이라고 하지?
햇살 가득한 봄날 한시간 동안
새들은 가슴이 얼마나 두근거릴까
산들 가만히 눈을 감는 가을 저녁
한시간 동안 새들은
얼마나 쓰린 허공을 날아야 할까
그걸 왜 한시간이라고 하지?
겨울밤 한시간 동안 생산한 견직물과
여름낮 한시간 동안 생산한 견직물의 양과
비가 오는 낮 한시간 동안 만든 시계와
눈이 오는 밤 한시간 동안 만든 시계의 양이
똑같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얼마나 대단한 발견이었을까?
그래서 시간은 발견된 것이 아니라
발명된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건 얼마나
혁명적 사건이었을까?
모두가 모든 때에 모든 몸에
같은 규격을 착용하고 다니면서부터
세상은 얼마나 바뀌었을까?
시간은 인생이 아니라
윤리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인간은 그로부터
얼마나 사생결단을 하는 것일까?
출처 - 백무산 시집 『그 모든 가장자리』-
2012년 창비
여름낮 한 시간과 겨울밤 한 시간은 무게와 질량에서 댈 것이 아니다. 비가 오는 낮과 눈이 오는 밤도 마찬가지로 밀도와 충일함에서 비교할 수가 없다. 그런데 우리는 한 시간이라고 똑같이 획일화시킨다. 한 시간 동안 거둘 수 있는 작업량을 계산해서 사생결단하듯 최고치를 경신하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좀 더 빨리 좀 더 많이 좀더…. 그 끝이 어디일지 아무도 묻지 않는다.
/박설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