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서 처음으로 본선 무대를 밟은 한국이 1986년 멕시코 월드컵부터 2014 브라질 월드컵까지 8회 연속 월드컵 본선 무대 진출이라는 대업을 달성했다. 아시아에서 8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8회 이상 월드컵 본선 연속 진출에 성공한 나라도 세계적으로 한국을 포함해 6개국밖에 되지 않는다. 최다 우승국(5회) 브라질이 1930년 우루과이 대회부터 개최국 자격으로 출전하는 2014년 대회까지 20회 연속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았고 독일(1954∼2010년 15회 연속·총 17회)과 이탈리아(1962∼2010년 13회 연속·총 17회), 아르헨티나(1974∼2010 10회 연속·총 15회), 스페인(1978∼2010 9회 연속·총 13회)이 그 뒤를 잇는다. 기록만으로는 ‘축구 강대국’과 어깨를 나란히 해도 손색이 없다.
하지만 브라질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이 끝난 상황에서 한국 축구는 비난을 받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대한축구협회는 2010년 7월 21일 조광래 전 감독에게 대표팀을 맡기면서 본격적으로 브라질 월드컵을 준비했지만 2011년 8월 일본과의 원정 친선전에서 0-3으로 완패한 데 이어 그해 11월 16일 베이루트에서 열린 레바논과의 월드컵 3차 예선 5차전에서 1-2로 패배하면서 월드컵 예선 탈락 위기에 놓이자 조 전 감독을 경질했다. 그리고는 수차례 대표팀 감독직을 고사했던 최강희 감독을 끈질기게 설득해 대표팀을 맡겼다. 하지만 최 감독은 최종예선까지만 사령탑을 맡겠다며 스스로 ‘시한부 감독’을 자처했다. 이때부터 한국 축구는 퇴보하기 시작했다.
월드컵 본선진출이라는 부담을 안게 된 최 감독은 1970년대에 보여줬던 일명 ‘뻥 축구’를 하기 시작했다. 장신 공격수인 김신욱과 이동국을 최전방에 세워두고 후방에서 한번에 골을 노리는 단순한 전술로 일관했다. 우여곡절 끝에 한국 축구가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긴 했지만 이대로는 안 된다는 비난 여론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대한축구협회는 최 감독이 사퇴를 선언한 지 12시간여 만에 기술위원회를 소집하고 홍명보 전 올림픽 대표팀 감독을 유력한 후보라고 발표했다. 홍 전 감독 외에 3명의 감독이 후보에 올랐지만 이름을 밝히진 않았다.
일각에서는 홍 전 감독이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런던 올림픽에서 가능성을 보인 홍 전 감독이 브라질 월드컵 성적에 연연하다보면 최강희 감독처럼 자신의 색깔을 내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홍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기더라도 1년 앞으로 다가온 브라질 월드컵 본선을 대비하기보다는 중·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한국 축구가 세계 축구의 중심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주자는 주장이다.
이러한 주장은 최근의 일본 축구를 볼 때 설득력 있다. 한국과 아시아 축구 라이벌 관계인 일본은 일찌감치 월드컵 본선진출을 확정한 뒤 현재 브라질에서 열리고 있는 2013 컨페드레이션스컵에 출전했다. 일본은 컨페드컵에서 브라질과 이탈리아에 연달아 패하며 탈락했지만 경기 내용 면에서는 세계 정상급 팀들과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특히 20일 열린 이탈리아 전에서는 이탈리아를 압도했지만 아쉽게 3-4로 역전패 했다. 일본의 경기를 본 축구팬이라면 누구라도 ‘일본 축구 잘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한·일 월드컵 이후 11년 동안 한국 축구와 일본 축구에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한국은 1948년 국가대표팀을 이끈 박정휘 초대 감독 이후 지금까지 원정 16강 기록을 달성한 허정무 감독이 2년 6개월간 지휘봉을 잡으며 가장 오랜 기간 대표팀을 이끈 감독으로 이름을 올렸을 정도로 수도 없이 감독을 바꿔왔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물러난 이후 11년 동안에도 최강희 감독까지 9번이나 감독을 바꿨다. 반면 일본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이후 4년 단위로 외국인 감독을 영입하며 월드컵을 준비해 왔다. 그러면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한국 축구와 달리 세계 축구의 중심으로 조금씩 다가가고 있었다. 세계 축구의 흐름을 익히기 위해 유럽과 남미의 감독을 영입하며 그들의 노하우를 완전히 흡수해 왔다. 당장 1년 앞으로 다가온 브라질 월드컵만 바라볼 것인지, 아니면 더 먼 곳을 보면서 세계 중심으로 나아갈 것인지 대한축구협회와 축구팬들의 현명한 선택이 필요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