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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지금소변’

 

몇 해 전부터 나이 드는 표를 하느라 그런지 돋보기를 쓰게 하더니 머리도 염색을 할 날이 지나면 먼지가 앉은 것처럼 추해진다. 그러나 신호를 보낸 것은 그보다 훨씬 전인데 몸이 보내는 신호를 드문드문 알아듣기는 했어도 대충 못들은 체 하고 지냈다. 그 결과, 맞는 옷이 별로 없더니 급기야 손이 저리고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신호가 아니라 더 이상 무시하면 가만있지 않겠다는 협박처럼 다가왔다. 조깅도 어렵고 밤에도 시간을 내기 어려워 이 궁리 저 궁리를 하다가 시설관리공단에서 운영하는 스포츠센터를 찾았다. 다른 프로그램은 등록 마감이 지났고 시간을 지켜야 하기에 비교적 자유로운 헬스에 회원으로 등록을 했다. 평소 아침잠이 많은 내가 어떻게 새벽 운동을 다니겠느냐고 걱정들을 했지만 우선 한 달이니 그거야 어떻게 해서라도 못 채우겠느냐고 받아쳤다.

처음 나간 날은 쑥스럽기도 하고 서툴기도 해서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러닝머신에서 열심히 걷는 사람이 낯이 익었다. 자세히 보니 대녀여서 인사를 나누고 옆에서 알려주는 대로 부지런히 따라 했다. 십 분이 지나고 땀이 번지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며 한참이 지났다. 사이클까지 이십 분을 타고나니 무리하면 안 된다는 권고에 다른 사람들이 하는 모습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조금 다니다 그만두지 말고 꾸준히 하겠다는 다짐도 빠뜨리지 않았다.

탈의실에서 옷을 벗으려고 하는데 샤워장 문에 큼직한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지금소변’ 내가 화장실 가고 싶은 걸 어떻게 알았을까? 하긴 운동 중간에 물을 마셨으니 샤워하는 도중에 난처한 지경을 당하지 말고 우선 다녀오라는 뜻이로구나 하며 화장실로 향했다. 그 뒤로도 한동안 ‘지금소변’이라는 지시를 어기면 큰일 나는 것으로 알고 볼일을 보고 샤워장으로 가곤 했는데 우연한 기회에 누군가가 낙서 얘기를 꺼냈다. 저마다 한 마디씩 하다가 예전 시멘트 담장에 그려진 ‘소변금지’라는 글씨 옆에 큼직하게 그려진 가위 얘기에 모두들 공감하고 있다는 신호처럼 한바탕 웃음바다를 이루었다.

아뿔싸!! 지금까지 당연히 ‘지금소변’으로 보이던 글씨가 내 입에서 웃음을 그치게 하면서 ‘소변금지’로 바뀌고 있다. 아니 이제야 제대로 보이고 있다고 해야 맞는 말이다. 하긴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생각과 동시에 꺼져있던 기억들이 스위치를 켜듯 밝은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익사사고 경고 문구를 학사고시로 읽지를 않았나, 에베레스트를 엘리베이터로 읽은 적도 있는데다 더 어이없는 사실은 요즘도 가끔 방송에서 이름 앞에 붙은 가명을 가평으로 읽는 수가 종종 있다.

사람의 말이나 생각이 자기중심적이라고 하지만 그동안 내가 잘못 읽은 것은 단순히 글자가 아니라 주위 사람들의 마음이기도 했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 덤벙거리는 탓에 제대로 읽지 못해 잘못 인식한 채로 판단하고 보여준 말이나 행동이 비록 의도한 바는 아니라 해도 그로 인해 다른 사람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 적은 또 얼마나 될까, 얼마나 어두운 그늘을 드리웠을지 잠시 머물러 나를 돌아본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낮은 담장을 넘어 수국이 고개를 내밀고 나도 조금 낯선 사람에게도 밝은 웃음으로 인사를 건넨다.

▲한국문인협회 회원 ▲한국 작가 신인상 수상 ▲가평 문학상 수상 ▲가평문인협회 감사 ▲플로리스트 ▲저서: 귀밥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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