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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정치]국정원 개혁의 선결 요건

 

공포영화에 나오는 유체이탈이란 말이 언젠가부터 유행이다. 무언가를 책임져야 할 사람이 자신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듯이 객관적인 제3자처럼 말하는 것을 빗대 ‘유체이탈 화법’이라고 일컫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이를 자유자재로 구사한 고수였으며, 박근혜 대통령의 내공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라고 평가받는다.

 

최근 박 대통령은 국정원의 조직적인 대선 개입에 대해 “이번 기회에 새롭게 거듭나야 한다”고 지시했다.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한 국정원에 대해 스스로 개혁방안을 마련하도록 ‘셀프 개혁’을 주문한 셈이다. 대통령이 국정원 개혁을 말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마치 이번 논란이 자신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듯이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하는 청와대의 그릇된 인식에는 실망을 금하지 않을 수 없다.

 

경위야 어찌됐든 대통령께서는 후보 시절에 “그 불쌍한 여직원, 결국 무죄인데도 민주당은 사과 한마디 하지 않고 있다”며 국정원 댓글 여직원이 ‘인권침해의 희생양’으로 비치도록 진실을 호도한 바 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검찰 수사에서 국정원이 지난해 조직적으로 대선에 개입한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대선을 코앞에 두고 국정원 간부가 경찰 수뇌부와 결탁하여 국정원의 조직적 대선개입을 축소·은폐한 것도 밝혀졌다.

 

시간을 거꾸로 돌릴 수는 없지만, 그 시점에서 대통령이 국정의 최고 책임자로서 국가기관의 불법행위에 대해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를 약속했더라면 문제가 이처럼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는 국정원의 국기문란·헌정파괴 행위를 방조하면서 “국정원으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지 않았다”며 국민의 분노에 불을 지폈다.

 

청와대의 침묵은 곧바로 국정원의 제2, 3 국기문란으로 귀결됐다. 청와대의 침묵을 정치개입에 대한 ‘용인’으로 읽었는지 몰라도 남재준 원장의 국정원은 국정조사를 물타기 하려고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했다. 그것도 정략적인 의도를 가지고 대화록 일부분을 고의적으로 발췌하여 왜곡시키고, 심지어 단어를 바꾸거나 없는 말까지 끼워 넣어가며 전직 대통령을 폄훼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스스로를 ‘나’라고 칭했지만 발췌본에서는 ‘저’로 바뀌었으며, ‘김정일 위원장’이라는 호칭에는 ‘님’자를 덧붙여, 전직 대통령을 북한에 최대한 굴종적인 사람으로 보이도록 진실을 비틀었다. 뿐만 아니라 NLL 포기와 상반되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은 아예 빼버리는 ‘적극적 왜곡’까지 버젓이 저질렀다.
더욱 가관은 사실과 거리가 먼 부풀리고 비틀린 내용을 보수언론이 받아쓰고 대서특필까지 하는 ‘블랙 코미디’가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이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는지 지난주 국정원은 대변인 성명을 통해 NLL 대화록의 문맥을 자르고 비틀어 아전인수 식의 궤변을 늘어놓는 억지 해석을 통해 제3의 국기문란을 자행했다.

 

이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원이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과 하등 다를 바 없다는 점을 명약관화하게 드러낸 것이다. 청와대가 이런 국정원에 대해 ‘셀프 개혁’을 주문하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이며, 우리 사회의 갈등만 증폭시키는 ‘국론 분열’의 처방일 뿐이다.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국정원이 자체 개혁을 위한 동력도 명분도 잃은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특히 남재준 국정원장은 ‘조직의 명예를 위해’ 정상회담 회의록을 자의적으로 공개하면서 정보기관 본연의 임무를 방기하고 국가적 혼란을 야기한 장본인이다. 그는 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한 순간 이미 정보기관 수장으로 자격을 상실한 사람이다. 오죽하면 외신에서 ‘한국에서는 첩보기관이 유출자(leaker)’, ‘정치적 선동가(provocateur)’라는 비아냥이 나왔겠는가. 국가적 망신이 아닐 수 없다.

 

이제라도 청와대는 상황의 엄중함을 인식하고 남재준 국정원장을 즉각 경질해야 한다. 국정원 개혁의 첫걸음은 정치적 성향의 지휘부에 대한 인적 청산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런 다음 국정원의 국내 정보수집 권한을 폐지하는 등 정치개입을 원천차단하기 위한 제도 개혁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국정원은 민주적 통제를 받는 헌법적 가치를 수호하는 조직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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