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초유의 국정원에 대한 국정조사는 그 자체로서 대단히 부끄러운 일이다. 이번 일은 국가정보기관의 위상추락은 물론 묵묵히 일하는 직원들의 사기에도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임은 자명하다. 표어대로 음지에서 국가안보를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할 정보기관이 국가안위와 무관한 일로, 양지에서 난타당하는 모습은 절차적 민주주의가 제도적으로 완전히 정착되지 못한 우리 정치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고, 또 한편으로는 여야의 막무가내식 당파이익 추구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국회가 국정원에 대한 국정조사를 합의해 놓고도 여야가 극한대치로 치닫고 시한이 불과 열흘밖에 남지 않은 이 시점에서 우리는 조사범위와 목적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이번 국정조사는 ‘국정원 직원 댓글 관련 의혹 국정조사’다. 즉 국정조사의 범위가 국정원 직원의 댓글에 관한 것이다. 정문헌 의원이나 김무성 의원, 권영세 주중대사 등이 서해 북방한계선(NLL)과 관련하여 언급한 것 혹은 무단불법 사초열람 및 공개라는 의혹을 갖고 있지만 이번 국정조사 범위에서는 제외되어 있다. 야당은 NLL관련 논쟁에서 궁지에 몰렸던 것이 사실이고 국정원의 협조 하에 이 이슈가 대선에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하여 이 세 사람과 국정원과의 커넥션을 부각시키고 파헤치려 한다. 야당으로서는 정상회담 내용보다 회담록의 누설과 그 과정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이슈로 만들어가려 하지만 NLL관련사항은 조사대상이 아니다. 그런데도 특위 소환의 대상을 NLL 이슈 관련자들에까지 확대하자는 것은 이번 국정조사의 방향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야당은 이번 국정조사 특위 증인 심문에서 댓글의혹 못지않게 특위 목적과 무관한 여당의 정상회담 내용 유출과 관련된 사안을 파헤치는 데 집중했다. 민주당은 표면상 국정원 댓글 사건과 경찰의 사건 은폐·축소를 김 의원과 권 대사가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에 특위로 소환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새누리당은 정치공세에 불과하다며 반박을 하고 있다.
둘째, 이번 국정조사의 목적은 댓글의혹을 철저히 밝혀 중립을 지켜야 할 국가정보기관이 다시는 대선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일벌백계의 경종을 울리고 역사에 그 기록을 남겨두자는 것이다. 여당은 국정의 중심축으로서 이번 국정조사의 목적이 무엇인지 잘 헤아려 철저하게 진상이 규명되고 국정조사특위가 원만히 운영되도록 해야 할 막중한 정치적 책임이 있다. 댓글의혹과 선거개입 연루에 책임이 있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 국정원 직원 초동수사를 지휘한 김용판 전 경찰청장이 국정조사 증인으로 소환되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런 것이다. 특히 원세훈 국정원장의 증인채택에는 소극적이었던 여당이 국정조사 시작 직전인 6월말 국정원으로 하여금 남북정상회담록을 발췌 공개하도록 하는 동시에 NLL관련 회담내용에 대한 해석까지 덧붙이도록 한 것은 오비이락의 오해를 받기에 충분하다.
대선 댓글의혹 국정조사에 임하는 자세를 보면 여당은 국정조사의 목적에 충실하지 못하고 야당은 국정조사의 범위를 일탈하고 있다. 국정조사에 임하는 여당의 지연작전과 불성실한 자세도 문제지만 며칠 전부터 이를 핑계로 시민단체와 함께 길거리로 나선 야당의 태도도 국민들로부터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댓글 관련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을 국회 특위에서 해결하도록 합의했다면 이 틀 안에서 진상이 규명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국기를 바로 세운다는 차원에서 국정원의 대선개입은 어떤 형태든 용납되어서는 안 되며, 이 기회에 특위에 의한 철저한 진상규명이 있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특위활동시간을 8월 15일 이후까지 연장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 이러한 대원칙을 전제한 후에 특위가 신속히 마무리 될 수 있도록 여당은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왜냐하면 최근 경제성장률이 조금 회복되었다는 통계가 발표되었지만 서민들이나 기업이 현장에서 체감하는 경기는 2008년 금융위기 이래 최악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개성공단의 폐쇄가 가져올 경제적 피해와 남북관계에 가져올 파장도 만만치 않다. 여야는 어서 빨리 국정원 대선개입의혹을 마무리하고 민생과 남북관계 돌파구 마련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국민이 간절하게 바라는 것임을 여야는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