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이산가족들은 기대와 실망 속에 가슴 졸이며 지난 주말을 보냈을 터이다. 23일 들려온 3년만의 상봉 재개 소식에 이어, 1차 후보 500명 컴퓨터 추첨이 이뤄졌다. 살아 있기는 한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얼굴 한 번 마주대고 물어보는 게 평생소원인 고령의 이산가족들에게는 가슴 벅차고 눈물이 절로 나오는 희비교차의 시간이었을 게 틀림없다. 특히 이번에도 역시 9월엔 100가족씩 대면상봉을 하는 데 불과하고, 10월에 40가족씩 화상상봉을 하는 데 그쳐 아쉬움이 짙을 수밖에 없다. 1988년 이후 이산가족으로 등록한 12만8천842명 가운데 이미 5만5천960명이 기다림 속에 숨을 거뒀다. 생존자 가운데도 80% 이상이 70세 이상 고령자들이다.
이산가족의 아픔을 덜어주려면 상봉을 정례화하고, 서신으로라도 소식을 자유롭게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남과 북 당국도 이 점을 모르지 않는다. 이번에도 실무접촉 합의서 4항에서 “남과 북은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생사확인, 서신교환 실시 등 이산가족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 계속 노력하기로 하였다”고 명시했다. 2010년 10월 이래 이산가족 상봉마저 끊길 만큼 남북관계가 경색돼 있었다는 점을 상기하면, 매우 큰 진전이다. 하지만 지난 70년대 첫 상봉 이래 비슷한 합의가 거듭 이뤄졌음에도 상봉 정례화 등이 실현되지 못한 이유는 이산가족 상봉을 다른 의제와 연결하는 관례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번에도 북은 금강산관광과 이산가족 상봉을 노골적으로 연계시키고자 했다. 그동안 관례처럼 되풀이했던 식량 지원과 상봉을 연계하지는 않은 대신 금강산관광 재개의 지렛대로 상봉을 이용하고자 하는 의도를 드러냈다. 다행히 남이 상봉장소를 북의 요구대로 받아들였고, 금강산 실무회담도 상봉 일정과 맞추어줌으로써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남측 역시 상봉 문제를 순수하게 인도적 차원에서 다루고자 했다면 북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부 의제는 거론하지 않는 쪽이 나았다. 상봉 정례화를 실현하고, 상봉 규모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상호주의적 회담 방식에 너무 얽매이지 않는 자세를 보여주는 게 좋다.
통일 전 동서독이 그랬듯이, 우리도 남북관계의 경색과 해빙에 관계없이 이산가족 문제만이라도 꾸준히 이어나가도록 해야 한다. 이게 가능하려면, 북이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주어야겠지만 남 또한 더 열린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다. 올 해 중 한 차례 더 상봉을 이뤄낼 실무접촉이 11월에 예정돼 있다. 추석상봉-화상상봉-실무접촉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이번에야말로 정례화가 정말 정착될 수 있도록 노력해주기를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