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의 저자 토머스 무어는 반역죄로 55살의 나이에 처형됐다. 그는 단두대에 올라가 사형집행인에게 “내 목은 매우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라며 머리를 쑥 내밀었다. 그리고 수염을 조심하라며 덧붙인 한마디는 “수염은 반역죄를 저지른 적이 없으니까”라고 한다.
영국 왕 헨리8세가 가톨릭 교리에 어긋나게 앤 공주와 재혼하기 위해 왕위 계승법을 만들려 하자 당시 대법관인 무어는 이에 대한 지지발언을 일체 하지 않았다. 이 ‘침묵’을 헨리8세와 당시 집권층은 ‘반역’으로 간주했다. 새로운 법이 옳다고 말해야 할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명분으로 재판에 회부돼 결국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러나 비록 무어는 재판에서 목숨을 잃었지만, “왕은 만인 위에 있으나 하느님과 법 아래 있다”는 그의 주장은 지금까지 살아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변호사 시절 ‘내 목은 매우 짧으니 조심해서 자르게’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 「세기의 재판」을 모아 펴낸 모음집이다. 이 책에는 재판이라는 이름으로 보여준 인류의 무지와 몽매 그리고 악(惡)을 동반한 복수심을 적나라하게 소개하고 있다. 특히 권력자들이 진실과 양심을 외면한 채 정의라는 이름으로 행한 눈먼 재판들을 모아 역사의 법정을 통해 재조명, 그 재판들이 우리에게 남긴 교훈도 적고 있다. 책속 ‘역사의 법정’에 다시 등장한 인물은 소크라테스, 예수, 잔 다르크, 토머스 무어, 중세의 마녀들, 갈릴레이, 그리고 근대의 드레퓌스, 필리페 페탱, 로젠버그 부부 등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일생은 개략적으로 알고 있지만 어떤 과정을 겪으며 재판을 받았는지는 잘 모른다. 그러나 이들의 위대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바로 그 고난의 정점인 재판과 처형과정에서다. 만약 법정에서 진실의 목소리를 낮추고 불의와 허위, 권력과 타협하여 목숨을 구걸했다면 우리가 오늘날까지 기억하는 그 명예와 이름은 결코 얻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이런 재판들을 흔히 ‘세기의 재판’이라 부르며 그들의 용기를 기억한다.
지난 주말부터 중국은 보시라이 충칭(重慶)시 당서기 재판으로 떠들썩하다. 우리언론들도 세기의 재판이라며 외신면을 할애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재판은 세기의 재판으로 보기 어렵다. 세기라는 명칭을 붙이기에는 재판의 성격이 너무 다르기 때문이다.
/정준성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