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건 감사원장의 전격 사퇴를 두고 정치권에서 말들이 많다. 청와대에서 특정인을 감사위원으로 내리꽂으려고 하니까 양건 원장이 반발해서 그만뒀다는 얘기도 있고, 4대강 문제로 고민하다가 결국은 스스로 그만뒀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무엇이 사실인지는 몰라도, 최소한 확실한 건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번 4대강에 대한 감사가 불거졌을 때도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이 문제가 됐었다. 다시 말해서 감사원이 말을 몇 번씩이나 바꿨다는 것이 논란의 핵심이었다. 물론 감사원은 말을 바꾼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감사의 중점 대상이 달라서 그랬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누구의 말이 진짜인지는 몰라도, 분명한 점은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 감사원이 정권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듯 국민이 감사원을 의심하는 이유는, 감사원의 태생적 한계에서 연유한다는 생각이다. 감사원장은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되어 있다. 물론 헌법 제98조에 따르면 감사원장은 국회의 동의를 받는다는 전제하에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되어 있고, 국회 본회의 표결을 거쳐야 하는 존재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어쨌든 최종 임면권자는 대통령이 될 수밖에 없다. 이는 헌법적으로 감사원이 “행정기관과 공무원의 직무에 대한 감찰을 목적으로 설립된 대통령 직속의 국가 최고 감사기관”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부분은 감사원이 ‘대통령 직속기관’이라는 점이다. 대통령이라는 행정부의 최고 책임자, 그리고 특정 정당 소속인 정치인의 직속기관이라고 할 때, 감사원이 정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얼마 전 논란 속에 마감된 국정조사의 대상이었던 국가정보원도 마찬가지다. 즉, 국가정보원도 대통령 직속기관인데, 이런 직속기관들 보고 정권 눈치 보지 말고 소신껏 일하라고 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꼴이라는 생각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슨 일만 터지면 정치적 중립성 운운하지 말고, 이제는 좀 구조적으로 생각할 때가 됐다.
감사원은 행정기관을 감찰하는 것을 주 임무로 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의 헌법적 구조로 봐서는 행정부 소속 기관이 행정부를 감시하는 꼴이 된다. 대통령제가 권력 분산과 견제라는 기틀 위에서만 제대로 작동할 수 있는 제도라면, 지금 감사원의 법적 위상은 대통령제의 본래적 취지와는 상당히 어긋나 있다. 사실 잘 사는 나라 중에 대통령제 하는 국가는 미국과 우리 정도이고, 대부분의 국가는 의원내각제라서 외국의 사례를 검토하기도 좀 뭐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감사원은 입법부 소속으로 있어야지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의 직속기관으로 있으면 곤란한 것은 확실하다.
그래서 미국도 감사원이 의회 소속으로 되어 있고, 의원내각제를 운영하는 국가들, 예를 들어 영국과 호주 같은 국가들조차도 감사원은 의회 소속으로 되어 있다. 우리처럼 감사원이 행정부 밑에 들어가 있는 국가는 일본 정도를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은 의원내각제 국가로, 의회의 다수파가 행정부를 장악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한국이 감사원에 대한 행정부의 통제가 가장 강한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상황이 이러니 우리나라 감사원은 만날 정치적 중립성을 의심 받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흔히 1987년 체제라는 용어를 자주 쓴다. 1987년 체제가 우리나라 민주화의 상징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당시는 대통령 직선제의 쟁취가 주목적이었다. 그래서 다른 ‘세부적’인 것들은 신경 쓸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젠 사정이 달라졌다. 우리도 두 번씩이나 정권교체를 경험했으니, 대통령 직선제가 간선제로 바뀔 것을 염려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제는 1987년 체제에서 신경 못쓴 부분을 바꿀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국가정보원도 그렇고, 감사원의 법적 위상도 이제는 시대에 맞게 바꿀 때가 됐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헌이 필요하다. 우리는 개헌이라고 하면 항상 권력구조를 바꾸는 것만 생각하지만, 이것 말고도 중요한 것은 많고 또 바꿔야 하는 것도 많은 것을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 시간을 놓치면 문제만 더 곪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