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중남부 오트비엔 주에는 오라두르 쉬르 클란(Oradour-sur-Glane)이라는 마을이 있다.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에 의해 주민 642명이 몰살당한 곳이다. 이 마을은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지금도 학살 당시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세계 3대 유령도시라 불린다. 1999년에는 학살 현장에서 발견된 희생자 유품 등을 모은 기념관이 이곳에 세워졌다. 기념관에는 학살이 발생한 시점에 멈춰진 시계, 열기에 녹은 안경 등 희생자들의 개인 유품 등이 보관돼 있다.
이 마을에 비극이 일어난 것은 1944년 6월10일이다. 200명으로 이루어진 나치 독일의 SS 파견부대가 652명의 주민들을 모두 집 밖으로 몰아내어 마을 광장에 모이게 하며 시작됐다. 그리고 숨겨진 폭발물을 찾는다는 명분으로 남자들은 헛간, 여자들과 아이들은 교회로 집결시켰다.
그 후 바로 문을 잠그고 독가스를 살포한 뒤 다이너마이트 등으로 마을 전체에 불을 질렀다. 주민들은 질식하거나 불에 타 죽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기관총을 난사하거나 수류탄을 터트려 살육했다. 사상자 수만 교회에 있던 여자 245명과 어린이 207명, 헛간에 있던 남자 190명 등 모두 642명이었고 10여명만이 간신히 살아남았다.
요아힘 가우크 독일 대통령이 내일(4일)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 함께 2차 세계대전 말 나치군의 대학살이 자행된 이 마을을 방문한다. 독일 대통령으로선 처음이다. 물론 희생자에 대한 추모와 과거를 반성하고 용서를 구하기 위해서다.
우리에게도 비슷한 사건이 있다. 1919년 4월15일 오후 우스노미야다로 일본군 중위를 비롯한 헌병대가 당시 경기도 수원읍 향남면, 현재의 화성시 향남읍 제암리 교회에서 벌인 만행이다. 주민들을 교회로 모이게 한 뒤 문을 잠그고 불을 지른 뒤 집단사격으로 어린아이와 부녀자를 포함 28명을 몰사했다. 제암리 학살사건이다. 독일 대통령의 오라두르 쉬르 클란 방문을 보며 새삼 일본의 비뚤어진 역사인식에 분노가 치민다.
특히 침략과 식민지배의 반성과 사과는커녕 군국주의의 부활마저 꿈꾸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오만함이 역겹기까지 하다. 최근 국가위상과 경제가 추락하면서 국제적 고립을 자초하고 있는 일본이 독일을 보고 배워야할 역사적 책무는 한두 가지가 아닌 듯싶다.
/정준성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