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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코미디 같은 북한의 영웅

 

한 나라 또는 한 시대에 위대한 업적을 남긴 뛰어난 인물을 흔히 영웅(英雄)이라 부른다. 영웅은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아야 하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공적이 있어야 한다. 공적이라 함은 주로 한 나라 또는 지구촌을 위한 헌신이어야 한다.

한국에서 여론조사를 통하여 영웅을 뽑으면 이순신 장군, 세종대왕, 김구 선생 등이 거론된다. 한국뿐만 아니라 한국을 아는 외국인으로 여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업적이 출중하기에 그렇다.

중국의 영화감독 장이머우(張藝謀)의 <영웅>이라는 영화가 있다. 주인공은 진시황제다. 그는 550년의 춘추전국시대를 마감하고 통일한 공적으로 중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 추앙받는다. 중국에서는 가히 영웅이라 말함에 손색이 없다.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이다. 그런데 이들은 한국에서 가장 기분 나쁜 두 명의 일본인으로 기억된다. 이들은 일본에서는 영웅일지 모르나 한국 또는 지구촌에서는 영웅일 수 없기에 진정한 영웅이 아니다. 남에게 해악을 끼친 패륜아이기 때문이다.

지난 5월 5일, 북한의 조선중앙방송은 저녁 8시 메인 뉴스를 통해 “불의의 정황 속에서 수령결사옹위의 영웅적 희생정신을 발휘해 혁명의 수뇌부 안전을 결사 보위한 리경심 동지에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웅칭호와 함께 국기훈장 1급을 수여한다”고 보도했다. 방송은 평양 인민보안국 교통지휘대 이경심씨를 전국이 따라 배워야 할 ‘시대의 영웅’으로 홍보하고 있다.

최근 알려진 바에 의하면 “당시 십자길(교차로)에서 교통지휘를 하던 이경심씨는 김정은이 탄 1호행사(김일성 일가의 행사) 차량들이 나타나자 곤봉을 들어 전방향 차량을 멈추었다. 반대 방향에서 내려오는 무궤도 전차를 발견하고 그것을 달려가 막았고 이를 차창너머로 목격한 김정은이 ‘시대의 전형으로 내세우라’고 지시하면서 일약 영웅이 됐다”고 한다.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북한에는 공화국영웅과 노력영웅이 있다. 이들에게는 생전의 삶이 보장된다. 공화국영웅은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 영웅이다. 김일성이 3번, 김정일이 4번 받았고, 1999년 세비야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여자 마라톤에서 우승한 정성옥, 김정일의 뒤를 이어 김정은의 권력을 지탱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김영춘도 공화국 영웅이다. 그런데 김정은의 차를 호위했다고 교통경찰에게 공화국영웅 칭호를 주다니. 그러니 방송에서 이유를 밝힐 수가 없었다.

노력영웅은 자신의 피나는 노력으로 북한을 위해 업적을 남긴 사람에게 주는 칭호이다. 1968년 미국 프에블로호 납치사건에서 공을 세운 군인들, 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에 도끼를 휘둘러 미군 2명을 살해한 군인이 이 칭호를 받았다.

가정에 불이 났다. 한 사람이 김일성, 김정일의 초상화를 껴안고 불에 타 죽었으면 역시 노력영웅이 된다. 노동당에 돈, 특히 달러를 많이 바쳐도 노력영웅의 칭호가 주어진다.

현재 3만명에 육박하는 탈북자들에 의해 북한의 속살이 가감 없이 드러나고 있다. 가히 영웅이라는 신성한 용어의 의미를 훼손시키는 일이 북한에서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다. 코미디라고 하기에는 허탈한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는 북한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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