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특징이 있듯이 작가에게도 특징이 있다. 작품을 쓸 때마다 서문을 쓰는 작가가 있는 반면 서문을 전혀 쓰지 않는 작가도 있다. 서문을 쓰지 않는 작가로는 최인호를 들 수 있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하기 때문이란다. 그런 그도 딱 한 번 서문을 쓴 적이 있다. 5권의 대하 『잃어버린 왕국』에서다. 서문도 간단한 소감 정도가 아니다.
1984년 여름 작가는 KBS의 역사기행에 리포터로 참여했다. 일본에 있는 고대 한국의 유적을 철저히 추적하는 프로그램이다. 아스카(飛鳥), 나라(奈良), 교토(京都) 등지를 취재하면서 번뜩이는 영감을 얻었다. 작가로서의 숙명이랄까, 아무튼 고대의 백제가 일본을 가르치고 영향을 끼친 것에 그친 것을 넘어서서 일본이라는 나라 자체를 세운 것이 아닌가 하는 영감이었다.
직감력하면 남에게 뒤지지 않는 작가는 돌아온 뒤 『삼국사기』 『삼국유사』와 일본의 『고사기』 『일본서기』등을 이 잡듯 뒤지기 시작했다. 작가의 말대로 고대사는 신비의 신천지였다.
그 결과로 한국의 학자들은 일본의 것이라 하여 숫제 연구할 가치조차 외면하였으며, 일본의 학자들이 편견과 교묘한 사실 은폐로 이를 감추고 조작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작가는 참을 수가 없었다. 신비로운 수수께끼를 푸는 기분으로 상상력을 되도록 절제하며 냉정하게 정사(正史)에 입각한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고대 왜국은 백제의 유민들이 세운 나라였으며 그들의 모국이 멸망하자 그들은 자신의 나라 이름을 일본(日本)이라 명명하고 한반도와 연결되었던 태(胎)를 끊고 독자(獨子)로서의 자립을 선언했다. 그러한 결론에 입각하여 1986년에 상재한 작품이 『잃어버린 왕국』이다.
이 소설은 역사학자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정재정 교수는 『교토에서 본 한일통사』에서 자신은 최인호의 발바닥도 쫓아가지 못한다고 찬사를 바친다. 물론 오류도 있다. 일본 고대사를 전공한 김현구 교수는 『백제는 일본의 기원인가』에서 작품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역사와 역사소설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때로는 매우 가까울 수도 있고 상당히 멀 수도 있다. 다소의 오류가 있다 해서 『잃어버린 왕국』의 가치가 폄하되지는 않는다.
작가는 여기에서 자신감을 얻은 듯하다. 고구려의 역사를 다룬 『제왕의 문』 『왕도의 비밀』, 장보고를 주인공으로 신라의 역사를 다룬 『해신』, 가야의 역사를 다룬 『제4제국』 등을 숨 가쁘게 썼다. 특히 『제4제국』에서 작가는 한국의 고대 3국이 신라, 고구려, 백제이나, 여기에 가야를 더한 4국이라고 주장한다. 가야와 일본의 관계를 추적해 『잃어버린 왕국』의 근거를 뒷받침하고 있다.
우리는 풍성한 역사소설을 지니고 있다. 유주현의 3부작 『대원군』 『대한제국』 『조선총독부』, 조정래의 3부작 『아리랑』 『태백산맥』 『한강』에 김주영의 『야정』 『객주』에 이르기까지 우여곡절의 현대사만큼이나 역사소설이 다양하다. 그러나 작가의 고대 역사를 다룬 작품이 없었다면 어떻게 될까. 작가는 한국 역사소설의 지평을 넓힌 크나큰 공로를 지니고 있다.
우리의 영원한 청년작가 최인호가 짧은 삶을 마감했다. 하늘에서 작가는 새로운 역사소설을 구상하리라 믿는다. 아마도 통일을 기다리며 통일의 여정을 다룬 작품을 내놓을 것이다. 작가의 영면을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