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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잃어버린 2천년 역사 누구를 탓해야 하나?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의 역사 왜곡 건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언론에서는 프랑스에서 반환한 외규장각도서 중 조선왕조의궤 반환 건에 대해 크게 홍보하고 기뻐했지만 그것으로 우리의 자존심을 찾을 수는 없다. 심각한 역사왜곡의 뿌리를 찾아 원상회복하지 않는 이상 우리 민족의 기상은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왜곡된 역사의 핵심이 바로 삼국유사의 고조선 기이편이다. 단군의 3대 계보, 이젠 바로잡길 바란다. ‘환인-환웅-단군’을 ‘환국-환웅-단군’으로 바로잡아야 신화가 아닌 역사가 된다.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는 환인은 일본학자 今西龍(이마니시류)에 의해 桓國(환국)이 桓因(환인)으로 위조된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훼손되지 않은 원본(규장각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모든 교과서는 일제에 의해 왜곡된 자료를 아무런 검증 없이 지금까지 교과서에 게재하고 있다. 서지학적 관점에서 볼 때, 적어도 대한민국 교과서라면 당연히 원본의 문구를 인용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대한민국의 모든 교과서에 인용된 <삼국유사>의 고조선 기이(奇異)편은 일제 강점기 이후 지금까지 桓國(환국)이 아닌 桓因(환인)으로 실려 있다.

우리 모두 동참하여 삼국유사 원본이 교과서에 실릴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담당 기관이나 언론 매체에서는 진실 검증을 위해 전문가를 초청한 공청회라도 시행해 주기 바라며 또한 그것이 사실이라면 교과서에 당당히 실어 주기 바란다.

우리는 독도에 대해서만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어떤 정치인도 일본에 의해 훼손된 역사를 바로 잡으려는 사람이 없었다. 2010년 11월 교과부 ‘동북아역사왜곡대처팀’에 <삼국유사> 원본을 바로잡아 달라고 제안했는데 그 당시 담당 연구사는 우리는 독도문제만 담당하지 한국사 왜곡은 담당하지 않는다고 전화해서 제안을 취하해 달라고 말했다.

이것은 단순한 용어의 문제가 아니라 환국의 실존과 관계된 것이며, 한민족 역사의 근원을 찾는 일이다. 이것이 회복돼야 한글의 기원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세종실록에는 ‘皆本而非新字也 古篆字模倣’, 즉 “대개 그 근본은 새로운 자가 아니라 옛 전자를 모방했다”라는 의미도 풀 수 있을 것이다.

세종이 1443년에 한글을 창제했다고 했는데, 일본의 아히루 신사에서는 화동원년(和同 元年)인 708년에 고대한글 38자가 발견되었으며, 일본 신사에서 이루어지는 주문들은 고대 한글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처음에 한글을 비난하던 일본 학자들이 일본에서 708년의 아히루 문자가 발견되자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를 말하면서 아히루 문자와 훈민정음이 친자(親子)관계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고대 한글인 가림토 문자와 일본 아히루 문자의 관계는 고대 문화 흐름상 대륙에서 섬으로 흘러들어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668년 백제가 멸망하여 그 지배층들이 일본의 문화를 만든 것처럼 단군 3세 가륵 임금 때 만든 가림토 38자가 일본 아히루 신사에 문서로 비전됐던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기에 세종실록에서도 훈민정음의 근본이 새로운 글자가 아니라고 말한 것이다. 단군조선의 문제가 해결되면 자연스럽게 한글 창제의 문제도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환국(桓國)을 환인(桓因)으로 고친 의도를 살펴보면, 일본은 조선을 병합하고 일본과 조선의 뿌리가 같다고 홍보하는 일선동조론을 내세웠다. 그러나 조선이 고조선으로 인하여 2천여년의 역사가 짧기에 고조선의 역사를 부정하기 위해 고조선 관련 역사를 집중적으로 말살했다.

고대 한글의 계보를 추적하면 단군 3세 가륵 임금 때 창제한 가림토 38자가 고대한글의 최초이며, 중국의 영향하에 한문이 숭상되면서 고대한글은 선가(仙家)에서 주술적인 용도로 쓰이다가 백제가 멸망하면서 백제문화가 일본으로 정착하는 과정에서 아히루 신사의 아히루 문자들이 발견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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