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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냉정에서 온정까지

 

지금은 공무원들의 근무환경이 예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좋아졌다.

정년이 보장되는 철밥통을 차지하기 위해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들도 공무원 사관학교라 불리는 학원으로 향할 정도로 인기직종이 되었다.

그러나 예전에는 그렇지가 못해 대부분 쥐꼬리라 불리는 월급으로 생활했다. 사정은 군인들도 마찬가지여서 직업군인들도 대부분 시골집 셋방에 살았다.

우리 이웃에도 아무개 상사로 불리는 사람이 노모를 모시고 살았는데 몇 년을 잘 지냈다. 그러나 밤새 안녕이라는 말처럼 초겨울 추위에 노모를 여의었다. 고향은 멀기도 하거니와 고향에 간들 장지 또한 없다는 하소연이었다.

친정아버지께서 예전에도 그와 같은 사람을 도와주신 것처럼 조금도 망설임 없이 묏자리를 내어 주셔서 장례를 무사히 치렀다. 며칠 후 두 내외가 찾아와 고맙다고 인사를 하며 고무신 한 켤레와 군용담배 한 보루를 드리며 부모님 같고 큰 형님처럼 모시겠다는 말을 하며 돌아갔다.

매서운 추위도 물러가고 산골 마을에도 봄이 왔다. 농촌의 봄은 꽃보다 먼저 병아리 장수가 온다. 집집마다 몇 마리씩 사서 처음에는 쌀쌀한 날씨라 라면박스 같은 데 넣어서 키우다 조금 자라면 닭장으로 옮겨 기르는데 어떤 집들은 그냥 풀어놓아 말썽을 피워 이웃 간에 다툼이 벌어진다.

그렇게 큰 형님처럼 모시겠다고 하던 사람들도 닭을 가두고 기르라는 말에 길에서 보아도 눈을 내리깔고 지나가더니 인사 한 마디 없이 다른 곳으로 전출을 갔다. 온정이 찬바람으로 돌아오는 데는 불과 몇 개월이면 충분했다.

아무 대가 없이 누더기 산을 만드는 아버지가 다음에는 그런 일을 하시지 않기를 바랐지만 그 후로도 사정이 딱한 사람의 처지를 그냥 모른 체 넘기지 않으셨다. 오갈 곳이 없는 사람의 집 지을 땅이며 재목이 될 만한 나무까지 베어주시며 살 수 있게 보살피셨다.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적어도 세 수레의 책을 읽고 틈틈이 선을 행하는 것이 부모님의 은혜를 갚고 자손의 앞날을 밝히는 길이라고 하시던 아버지도 떠나시고 군인들은 더 이상 남의 집 월셋방을 살지 않아도 되게끔 군인 아파트가 들어서고 장례 문화도 바뀌었다. 과연 모든 것은 지나간다.

그러나 흐르는 물도 한 번의 소용돌이를 만나 듯 친정 산이 군부대가 확장 되면서 군용지로 편입되었다. 이어서 찾아온 방문객은 할머니 묘지 이장 비용을 요구해 가까이 사시는 당숙께서 군용담배 한 보루와 고무신 한 켤레 값을 돌려 줄 터이니 그 동안 공짜로 사용한 임대료를 계산하자고 명료한 답변을 하셨다. 물론 법무사 사무실 명함을 내밀고 씁쓸한 낯으로 돌아가는 일이 있었다.

그 후 어머니가 아버지 곁으로 가실 때는 어린 나이에 친정 산에 아버지를 묻고 은혜를 잊지 않은 사람이 자기 차에 영정 사진을 모시고 앞장을 섰다.

마을 입구에서는 기꺼이 상여를 메고 산으로 올라갔다. 우리 집 일에 한 번도 빠지지는 일이 없다. 하기야 예수님 시대에도 치유 받은 사람은 열 명이었으나 돌아와 감사를 드린 사람은 단 한 사람이었다. 그 한 사람이 있어 온정의 대가로 돌아오는 냉정까지 감싸 안으며 살아갈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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