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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억새가 세상을 기웃거리는 이유

 

이맘때쯤, 찬바람 들녘을 휘~휘~ 젓기 시작하면 빙그레 웃으며 여지없이 시골 마을 어귀에 들어서는 그. 키가 커 싱겁기까지 한, 올 때는 늘 혼자가 아니었던. 가을 타느라 옆구리 시리게 쓸쓸해 하는 우울한 여심을 달래느라 무더기 무더기로 자리를 잡고 연신 모가지를 흔들어 어설픈 춤사위를 보여주던 그. 그 흔하디흔했던 억새조차도 이즈음 21세기 트렌드에 맞추어 숱한 사람들을 불러들일 줄 아는 축제를 열었다.

요즘 우리나라는 매일매일 축제로 시작하여 축제로 끝나는 듯 전국이 축제의 연속이다. 인삼, 고추, 아카시아, 젓갈, 맥주, 대추, 머드 등등. 이런 축제가 지방홍보와 지방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부분엔 바람직한 면이 참으로 많아 보인다. 하지만 자연을 소재로 한 경우에선 안타까운 면을 보이기도 한다. 산이나 자연이 그 대상이 될 때 소중한 환경, 그 자연이 뒷전이 되는 경우를 종종 보아왔기 때문이다. 축제를 위해 억지준비를 한 자연은 이미 자연이 아닌 축제를 위한 작품이 되어버리니 말이다.

며칠 전 재약산을 오른 적이 있다. 송골송골 땀 흘리며 두 시간 이상 오른 재약산 사자평에서 본 그 억새들의 모습은 새삼 감동으로 다가왔다. 결코 인공적이지 않아 더없이 자연스러운 본연의 모습이었던 재약산 억새야말로 자연 그대로의 억새였던 것이다. 그 옛날 들판에서 무리지어 피어있던 그 춤사위를, 그 높은 산 사자평에서 바람과 더불어 만날 수 있다니. 관광객을 불러들이기 위해 지나치게 인공적으로 다듬어진 그런 억새 모습과는 사뭇 다르게 잡풀, 키 낮은 잡목에 섞여 수런수런 흔들리고 있는 모습들이라니. 꾸미고 다듬지 않아 더 아름다운 그것이야말로 진정 우리가 세상 속 어디에서라도 만날 수 있는 보통 사람, 그 서민들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결코 무리 속에서 튀지 않아, 있는 듯 없는 듯 섞여 살아가고 있지만 하나같이 소중한 그들. 화려한 연예인들처럼 입는 옷, 드는 가방 하나에도 이름을 달아 날개 돋친 듯 소문을 만들어내지도 못하고 그저 매일매일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 그들의 꾸밈없는 수수한 색깔이야말로 진정한 우리 사회의 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잊고 산다. 이 가을 9월 말이면 서서히 피기 시작하여 가을 내내 민둥산을, 또는 들판을 심심하지 않게 일렁이며 물들이다 겨울 다 가도록 은근히 그 자리 떠나지 못하고 오래도록 지킬 줄 아는 억새의 끈기라니. 그것이야말로 서민들의 그것과 닮은 듯 보인다.

향기가 묻어나는 봄꽃, 원색적인 여름 꽃도 아닌, 가을 국화처럼 은은한 향기를 풍기지는 못하지만 그 몸짓만으로도 마음을 전할 줄 아는 멋. 휘휘 저으며 허리를 굽힐 줄도 알고 바람 불면 부는 대로 우~ 우~ 슬퍼할 줄 아는 진솔한 가을 꽃. 그 억새의 옷을 입고 수수하게 살아가는 나는 오늘도 비지땀 흘리며 산과 들을 찾고 있다. 나를 닮은 그 꽃이 좋아서인지 그를 닮은 내가 좋아서인지 알 수 없지만 자연 속에 가만히 놓아둔 그 멋스러움을 만나고 싶어 세상 속을 기웃거리며 살고 있는 것이다.

▲에세이 문예 등단 ▲한국 에세이 작가연대 회원 ▲평택문협 회원 ▲독서토론논술 문화원 원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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