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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행사, 마구 우려먹기

 

어떤 말이나 내용을 혹은 음식을 우려먹다, 울궈먹다는 말이 있다. 이것은 한 번 한 일을 자꾸 들추어 반복해서 진부해지는 상태, 또는 알뜰하게 써먹을 때 쓰는 말이다. 시흥문인협회는 올해 참으로 알뜰하게 행사를 우려먹었다. 제11회 시화전 ‘시와 해설이 있는 풍경’이 주인공이다. 메타세콰이어 나무판에 기계적 양각을 이용해 만든 서각작품이다.

1차 전시회날, 많은 걱정을 하며 대야복지회관 5층 전시실 문을 여니 문학이란 지적인 아름다움 위에 진한 나무향이 코 속으로 확 스며와 가슴을 뿌듯하게 한다. 참 아름답다. 회원들이 풀어낸 시귀 하나하나가 아름답고 메타세콰이어 나무판 안에서 자태를 뽐내는 문자들이 아름답고 나무판에서 뿜어내는 향내가 아름답다. 게다가 음대학생들의 바이올린 3중주가 잔잔하게 전시실 안으로 퍼져 귀를 즐겁게 하니 이번 전시는 금상첨화렸다.

오픈식 날 참여한 많은 사람들이 모두 한 마디씩 한다. 고급스럽다, 우아하다, 차분하다, 향기롭다. 좋은 칭찬의 말씀들이다. 그리고 36편의 작품 하나하나 음미하는 사람들이 작품 앞에서 자리를 뜰 줄 모른다. 그런 여기저기 작품 감상하는 풍경을 보면서 전시회를 준비하느라 애쓴 임원들이 눈물겹게 고맙기만 하다.

두 번째 우려먹기로 했다. 정왕동 중앙공원 야외전시회, 책축제와 함께 9월의 푸른빛 나무 아래 나무판 시화들의 조화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많은 시민들이 여기저기 서서 작품을 감상하는 것을 본다. 책축제에 왔던 사람들과 산책하는 사람들이 지나던 발걸음을 멈추고 시 속에 빠져든다. 아주 세련되게 만든 하늘빛 표지의 시화집 또한 관객들에게 인기가 좋다. 그냥 한 권씩 드리자 미안해하며 가져간다. 야외시화전은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어서 힘들고 버겁지만 회원들 모두 보람 있어 한다.

3차와 4차는 관내 고등학교에서 시화전시와 함께 학생들에게 문학강좌를 열어주는 일이다. ‘찾아가는 청소년문학축제’ 개념이다. 고등학교에서 이렇게 하는 데는 인터넷 문화에 젖은 청소년들의 눈길을 문학으로 이끌고자하는 데 목적이 있다. 재미없는 문학이어서 학생들이 등한시하기 쉬울 거라는 예감은 오산이었다.

제3차 우려먹기는 은행고등학교에서 한 전시회다. 중간고사를 마친 학생들에게 한글날을 맞아 도서실 앞 복도에 이젤로 잘 전시하였다. 학생들은 멋진 게시판을 만들고 게시판에 읽은 시에 대한 느낌을 아주 정성스럽게 메모를 해놓았다. 점심시간에 만난 학생들은 학교를 방문한 회원들을 붙들고 시에 대해 질문하고 사인을 청하고 사진을 찍고 너무 좋아한다. 그런 학생들을 보며 뿌듯하기만 하다.

제4차 우려먹기는 시흥고등학교에서다. 시험을 끝낸 학생들은 축제 분위기였는데 학교 로비에 시화를 전시하고 문학강좌는 신청을 받아서 하는데 의외로 신청자가 많아서 강당 안이 꽉 차고 자리가 없어서 바닥에 앉아서 강좌를 듣는 학생들도 있다. 강의하는 강사나 학생들의 열기가 뜨겁게 타오르는 강당 안이다. 참 이렇게 하길 잘 했다, 하는 순간들이 함께한 회원들의 가슴을 뿌듯하게 하는 걸 나는 안다. 우려먹는 일이 진부하지 않을 때 그 진부가 숭고하다.

▲(사)한국문인협회 시흥시지부장 ▲저서: 시집 <연밭에 이는 바람>외 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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