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썩거리던 관광버스 한 대가 휴게소로 들어서자 불붙은 단풍이 한꺼번에 확~ 쏟아져 내렸다. 어느 산을 거쳐 왔는지 알록달록한 옷에 울긋불긋 익을 대로 익은 얼굴들. 우르르 흩어지는가 싶더니 이내 음반가게 앞에서 흔들어대고 화장실 앞에서 또 한 번 흔들어댄다. 가히 치열한 음주가무의 현장이다. 그 모습 한참을 바라보고 있자니 얼굴 붉어지다 말고 한바탕 웃음이 터져 나오고, 더하여 야릇한 숨은 흥이 스멀스멀 기어오르는가 싶더니 이내 코끝이 찡해진다. 흥에 겨워 춤추시던 환한 우리 어머니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어디에 저런 열정이 숨어있었을까. 다소곳이 입 다물면 전혀 눈치 채지 못할 얌전한 모습, 숨겨둔 그 신명 풀 길이 없어 날 잡아 풀어대는 늙수그레한 그들이야말로 대한민국과 더불어 성장해온 우리 사회의 숨은 일꾼들이 아닐까. 과연 그들에게서 처절하고 치열하지 않은 게 무엇이 있었을까. 자식들 가르치느라 몸이 부서져라 일해 왔고, 그 자식들 성장하여 이제 훠이훠이 떠나갈 나이. 그 허무함은 온전히 그들이 감당해야할 그들의 몫. 인터넷을 잘 하여 그 화병 풀어낼 줄도 모르고, 그 흔한 노래방에서 목이 터져라 스트레스 한 번 제대로 풀 방법을 모르니 날 잡아 한풀이 할 수밖에.
며칠 전 가족 모임에서의 일이다. 부모님 형제분들과 함께 30·40대 40∼50명이 한 자리에 모이는 대가족 모임이라 꼭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자리였다. 식사를 하고 술도 한 잔 한 뒤 갖게 된 음주가무의 시간. 할머니를 위해서 트로트를 부르며 어울리는 손자, 고사리 손으로 손뼉을 치며 엉덩이춤을 추는 증손자의 애교 섞인 모습에 숨이 넘어갈 듯 웃어 보이시는 어르신들. 한 차례 신명이 오르자 칠순을 넘기신 우리 어머니는 땀을 뻘뻘 흘리며 춤을 추신다. 기회가 없었을 뿐이지 어머니도 얼마든지 저렇게 환한 모습으로 그 신명 풀어낼 줄 아셨던 것이다.
물론 정도를 지킬 줄은 알아야 할 것이다. 몇 해 전 아이들을 데리고 세계사 탐방차 유럽여행을 갔을 때의 일이다. 술에 취해 주체할 수 없는 흥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속옷 차림으로 호텔 로비에 나와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다 제재를 당하시는 한국 어른들의 모습을 보는 순간 정말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이들조차 고개를 돌리던 그 모습은 그야말로 부끄러운 모습이었다. 흥을 푸는 방법을 몰라 그런 실수를 했겠지만 해외여행을 갈 정도의 여유가 있다면 기본적으로 때와 장소를 가릴 줄 아는 지혜로운 놀이문화도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던 순간이다.
이제 여행을 가다 우연히 만나는 관광버스의 흥에 겨운 사람들을 만난다면 먼저 얼굴 붉히며 불만을 얘기하기보다 환하게 웃으며 그들을 이해하려 들 것 같다. 내 나이가 들어서이기도 하고, 흥을 풀고 싶어도 몸이 말을 듣지 않아 마음껏 풀어내지 못하는 연세 드신 우리 어머니 생각이 들어서이기도 하고, 언젠가 내 모습이 될 수도 있을 거란 막연한 추측쯤에서 해 보는 생각이다. 부디 넘치지 말고 그 신명 끓어오르기만을 바라면서.
▲에세이 문예 등단 ▲한국 에세이 작가연대 회원 ▲평택문협 회원 ▲독서토론논술 문화원 원장(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