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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로마인 이야기’를 6번째 읽은 감회

 

시오노 나나미의 역사평설 ‘로마인 이야기’를 6번째 읽고 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편을 읽으면서 항상 느끼는 점이 있으니 그의 관용 정신이다. 주지하다시피 로마는 다인종·다민족·다문화·다언어·다종교 국가이다. 하루도 조용할 날이 있을 수 없었다. 이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제정 로마의 기틀을 다진 인물이 카이사르이다.

그는 BC44년 3월15일 정적 14명에게 암살당했다. 황제가 되려는 시도를 한다는 이유였다. 카이사르는 의심받을 만한 일을 차근차근하고 있었다. 막상 암살당하자 그에게 비친 칭호는 ‘조국의 아버지(파테르 파트리아이)’였다. 로물루스가 로마의 건국자라면, 카이사르는 제2의 건국자, 곧 ‘중흥의 시조’라는 의미이다. 로마 시민들은 카이사르를 죽인 브루투스 등 14명을 암살자라고 부르지 않았다. ‘파리키다(아비를 죽인 놈)’이라 불렀으니 증오와 분노, 그리고 슬픔을 드러내는 민중들의 표현이다.

그의 결단을 흔히 ‘루비콘강을 건넜다’고 말한다. 그는 전쟁은 되도록 피하고 타협하여 하였다. 정적 품페이우스에게 가겠다는 장수와 병사는 언제든지 보내주었다. 아무리 배신을 때려도 용서해 주었다. 전쟁이 끝난 뒤에 살생부도 만들지 않고 모두 묻어버렸다.

로마인들에게 가장 큰 영예는 개선식이다. 카이사르는 루비콘강을 건넌 후 5번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로마의 대권을 거머쥐었다. 물론 개선식을 성대하게 거행했다. 10일 사이에 거행한 개선식은 그러나, 4번뿐이었다. 첫째 날은 갈리아인에 대한 승리, 둘째 날은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13세에 대한 승리, 셋째 날은 폰토스왕 파르나케스에 대한 승리, 넷째 날은 누미디아왕 유바에 대한 승리를 자축하는 개선식이었다.

로마의 전권을 장악한 폼페이우스에 대한 승리의 개선식은 없었다. 동료요, 나중에는 사위가 되기도 했지만 동족 로마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끝까지 전쟁을 피하려고 하였다. 최후로 선택한 어쩔 수 없는 전쟁이었다. 그렇지만 폼페이우스를 사살하고 목을 바친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집단은 용서하지 않았다. 집요하게 추격하여 복수를 감행했다.

시오노 나나미는 말한다. 패자도 끌어들여 동화시켜 버리는 로마인의 전통적인 방식이 거대한 로마를 만들었다고. 그 표본이 율리우스 카이사르라고.

관용은 포용을 낳는다. 용서하면 끌어안게 된다는 것이다.

1946년 2월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로 실질적인 정부를 조직한 김일성은 1948년 9월10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선포했다. 당시에는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북한이 남한보다 여건이 훨씬 좋았다. 이 좋은 여건으로 관용을 베풀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가 주창한 민족주의를 꼭 전쟁으로 이루어야만 했는가에 대하여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관용이 아닌 증오는 민족 전체에게 불신과 적대감을 낳았다. 그의 손자가 행하는 현재의 모습이 모두 김일성이 단행한 증오의 결과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자신들이 통치하는 곳에서도 증오의 칼날을 번득인다. 탈북자에 대한 사살과 각종 수용소가 그것이다.

남한을 향한 극도의 증오심은 핵과 미사일이다. 이를 바탕으로 한 벼랑끝전술(brinkmanship)은 언제까지 유효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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