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6일 미국 최초로 조지아주 상원에서 ‘동해병기’ 결의안이 만장일치로 통과돼 우리나라 동쪽 바다를 ‘동해(East Sea)’로 명기하게 됐지만 마지막 단계에서 일본이 고용한 로비스트들의 총력 로비로 법안의 ‘합법적인 폐기’라는 예상치 못한 암초를 만났다.
‘동해표기’는 우리 민족이 2천여년 동안 사용해 오고 있는 명칭이다. ‘삼국사기’ 동명왕본기(기원전 50년경)에 등장해 광개토대왕릉비, ‘팔도총도’, ‘아국총도’ 등 다양한 사료와 고지도에 기록돼 있다.
또 동북아역사재단 자료에 따르면 동해는 일본이라는 국호의 등장보다도 700년이나 앞서 사용된 명칭이다. 반면 최초의 일본해 표기는 1602년 이탈리아 선교사인 마테오 리치(Matteo Ricci)가 ‘곤여만국전도’(坤與萬國全圖)에서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해’ 수역은 오늘날과 거의 유사한 모습의 세계지도가 본격적으로 제작되던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일본이 아시아의 강국으로 부상하면서 ‘일본해(Sea of Japan)’라는 표기로 널리 알려졌다. 특히, 1929년 국제수로기구(IHO)가 ‘해양과 바다의 경계(Limits of Oceans and Seas)’ 초판과 제2판(1937년) 발간 당시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배하에 있었기에 국제사회에 동해 명칭의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해 ‘일본해’ 표기가 국제적으로 확산됐다. 또 제3판이 발간(1953년)될 때도 한국전쟁 중이었기 때문에 지도상의 표기에 대해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우리나라는 1991년 유엔 가입 이후 1992년 유엔지명표준화 회의에서 처음 동해 표기 문제를 공식 제기했다. 통상 둘 이상의 국가가 공유하고 있는 지형물에 대한 지명은 일반적으로 관련 국가들 간의 협의를 통해 결정하며, 만약 지형의 명칭에 대해 합의하지 못하는 경우 각각의 국가에서 사용하는 지명을 병기하게 된다.
이런 지도제작의 일반원칙은 국제수로기구(IHO)와 유엔지명표준화회의(UNCSGN) 결의에서도 확인된다. 2009년 우리 정부가 세계 언론, 각국 지도제작사, 출판사 등에서 ‘동해’를 병기하는 사례를 조사한 결과 28%에 불과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동해는 물론 독도도 그렇다. 오랜 역사 속에서 일본 정부와 개인들이 스스로 독도를 그들의 영토가 아닌 조선의 영토로 인정했던 사실은 현재까지 오롯이 남아있다.
1905년 2월22일 엄연한 당시 조선의 영토인 독도를 일본 시마네현(島根縣) 영토로 편입한다는 고시문을 자신들의 한 동네인 현(縣)의 명의로 멋대로 발표하고는 독도가 자신의 땅이라고 우기는 황당한 나라가 일본이다.
그러나 최근 역사적으로 일본의 개인과 정부가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입증했던 지도와 자료들이 수원에서 공개되고 있다. 일본 마쓰에 번(松江藩: 지금의 시마네현에 있던 봉건 영주 관청)의 관료인 사이토 간스케(齊藤勘介)가 1667년 제작한 ‘은주시청합기’에는 울릉도와 독도에 대해 기록하고 일본의 서북쪽 한계는 오키 섬이라는 고백,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 땅이라고 인정한 내용이 대표적인데, 최근 일본 외무성과 시마네현 홈페이지에서 삭제됐다.
1785년 제작된 ‘삼국통람여지노정전도’라는 일본의 지리학자이자 국제 정치학자였던 하야시 시헤이(林子平)가 만든 것으로 일본을 중심으로 주변 3국의 색채를 달리해 제작한 지도다. 이 지도에는 조선과 일본 사이에 섬 두개를 그려 놓고 ‘조선이 소유하고 있다’고 기록됐다.
동해의 단독표기 또는 병기문제나 독도문제 등 복잡하게 얽혀있는 많은 문제들은 하루아침에 해결될 사안이 아니다. 글로벌 시대에 걸맞게 세계의 언론, 각 나라의 지도제작사, 출판사 등과 적극적인 연대를 통해 정부는 물론 민간차원에서도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동해병기 문제를 조지아주 재미동포사회에서 이끌어 낸 것처럼 일본 내의 양심적인 학자와 국민들과 연대해 진실을 밝히는 일에 꾸준히 힘을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