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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담배의 별명은 다양했다. 남초(南草), 남령초(南靈草), 담바고(淡婆古), 망우초(忘憂草), 심심초 등. 한 번 빨아 습성이 되면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 없어 상사초(相思草)라고도 했다. 초기에는 남녀노소 구분이 없었다. 여자가 남자보다 더 많이 피웠다는 기록도 있다. 적어도 근세까지는 그랬다. 당시 참고 살아야 했던여성들은 담배로 스트레스를 풀었던 모양이다. 명성황후도 궐련을 즐겨 피웠다고 한다. 또 옛날 양가의 마님들은 나들이를 할 때 항상 담뱃대와 담배쌈지를 든담배전담 여종을 뒤따르게 했다. 이들을 연비(煙婢)라고 불렀다. 이런 담배가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온 것은 1616년 광해군 때다..

조선 중기 문인 장유(張維)는 이름난 애연가였다. 인조때 우의정을 지낸 그는 뒤에 효종의 장인이 된 인물이다. 장유는 자신의 문집 계곡만필(谿谷漫筆)에서 담배의 전래 과정과 당시의 흡연 풍속 등을 상세히 기록에 남겼다. 조선 왕들 가운데는 정조, 고종, 순종이 애연가로 알려져 있고 특히 정조는 신하와 백성들에게 담배예찬론을 적극적으로 펼친 왕으로 유명하다.

우리의 담배 판매 역사는 1897년부터다. 청나라 상인들은 주로 영국에서 수입한 궐련을 팔았고 일본인들은 본국에서 가져다 팔았다. 그러다 1921년 일제가 ‘조선연초전매국’을 만들어 총독부 주도하에 담배장사를 시작했다. 해방 이후엔 ‘전매청’이 만들어지고 담배를 국가독점 사업으로 운영했다.

광복 되던해 9월, 전매청에서 만든 ‘승리(勝利)’ 담배가 처음 출시됐다. 우리 기술진이 만든 최초 담배였다. 가격은 3원 이었지만 아무나 피울 수 없을 만큼 고가의 사치품이었다. 당시 쌀 한 말 가격이 45원이었으니 말이다. 따라서 담배는 전매품이었지만 해방직후 인천에만 사제(私製) 담배 제조소가 4천여 군데나 성업할 정도로 불법생산이 기승을 부리기도 했다.

현재 현재 우리나라의 담뱃값은 OECD 회원국을 포함한 주요 41개국 가운데 가장 낮다. 담배가격 중 담뱃세가 차지하는 비중도 WHO 권고값 (70%)을 밑도는 62%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의 성인 남성의 흡연율은 49%로 OECD 국가 중 1·2위를 기록하고 있다.

흡연율도 줄이고 세수도 확보하기 위해 정부가 담배값 인상을 또다시 들고 나왔다. 하지만 담배는 중요 물가 항목이다. 두 마리토끼를 잡기위해선 신중해야한다.

/정준성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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