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85년 12월 한국농어촌공사에서 남양주시 오남읍 오남리 천마산 줄기 팔현계곡에 오남리와 양지리 등 일대 600㏊의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길이 412m, 높이 30m의 제방을 쌓아 만든 총 유역면적 1천552㏊에 이르는 오남저수지가 있다.
이 저수지는 천마산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복두산,우측에는 철마산으로 둘러 쌓여 있어 마치 사계절 변화하는 그림을 보여주는 호수인 듯하다.게다가 남양주시가 이 저수지 일대에 공원화 사업을 통해 잘 만들어 놓은 둘레 3㎞ 가량의 산책로가 있어 인근 시민들은 물론 외지인들도 많이 찾는 남양주의 아름다운 명소중 한 곳이다.
이 같은 저수지 산책로 바로 옆에 저수지 풍광과 인근 산세 등을 조망할 수 있는 명당(?)이 자리잡고 있고, 그 명당에 무인가게가 있다.
-무인가게를 본 순간 시원한 얼음물을 마신 기분이었다-
지난 7월 초 쉬는 날 가까운 지인과 둘이 남양주의 명산 중 하나인 천마산을 찾았다.등산이라기보다는 트레킹 한다는 마음으로 호평동 방향에서 올라 임도가 끝난 지점에서 오남저수지 방향으로 내려갔다.
오남저수지로 가는 길이 숲길이기 때문에 따가운 햇살을 피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서 택한 코스였다. 숲길이었으나 바람이 없어 조금은 무더웠으나 그래도 그날 기온이나 날씨에 비하면 훌륭한 선택이었다.
오남저수지 옆 길을 따라 내려오다가 함께 간 지인이 “이곳에 무인가게가 있는데 들려 볼까?”하고 제안했다.
난 순간 시원한 얼음물을 한 잔 마신 기분이었다. 무인가게에서 캔 맥주 두 개를 꺼내 들고 ‘돈 넣는 곳’에 계산을 한 후 무인가게 야외에 마련되어 있는 옥돌(?) 테이블과 의자에 앉아 맥주 한 모금을 마시는데 50대 후반쯤으로 되어 보이는 인상 좋은 주인장이 환하게 웃는 얼굴로 나타났다.
지인과 나는 “남양주에 이같은 무인가게가 있다는 것이 너무나 신선하고 자랑스럽다”고 주인장에게 말하고 통성명을 한 후 “언젠가 다시 한번 찾아 오겠다”했다.
이렇게 알게 된 주인장은 올해 61세의 동안인 신중설씨였다. 주인장을 만나기 위해 최근 전화를 한 후 다시 찾았을 때 그는 반갑게 맞아 주었다.
지난번 처음 만났을 때 언젠가 무인가게를 소개하고 싶어 기자라고 밝혔다. 이날 주인장은 여러 매체에서 취재를 요청했으나 자신의 뜻이 왜곡되게 비쳐지는 것이 싫어 한사코 사양해 왔다고 밝혔다.
그래도 네이버 검색창에서 ‘무인가게’라고 검색하면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이 블로그 등에 올려 놓은 글과 모 언론사 객원논설위원이 올린 글을 볼 수 있다.
나이를 무색하게 하는 해맑은 웃음 때문에 더욱 기분좋은 느낌을 주는 주인장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대지 198㎡ 규모에 각층 29㎡씩 4층으로 건축한 건물 내부를 둘러보았다.
1층에는 음료수 등 간단하게 마시거나 먹을 수 있는 물건과 물건값을 집어 넣는 나무로 만든 ‘돈 넣는 곳’이 있고 그 옆에는 잔돈을 바꾸어 갈 수 있도록 거스름 돈이 놓여 있다.
1층 무인가게 앞 정원에는 앉아서 쉬며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파라솔과 각종 화초 그리고 높다란 괴목에는 태극기 2개가 걸려있다.
2층과 3층은 주인장이 직접 통나무를 깎아 만든 테이블과 의자를 비롯해 책까지 비치되어 있는 쉼터가 있다. 다녀간 길손들이 벽면 곳곳에 흔적을 남겨 놓았다.
신중설씨가 요즘같이 각박한 세상에 이곳에 무인가게를 만든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해 다시 마주 앉은 후 물었다.
말을 아끼던 주인장이 처음 우리를 봤을때 “인상이 좋았다”는 기분 좋은 말을 들려주면서 속의 이야기 보따리를 조금씩 풀었다.
-롤모델인 어머니의 삶이 지금의 신중설씨가 추구하는 삶이다-
자신의 롤모델은 오남저수지가 있는 팔현리가 고향인 어머니라고 밝혔다. 신씨는 평생 훌륭하게 사신 어머니의 삶을 통해 ‘양보’라는 실천을 배웠다고 회고하며, 집 거실에는 대형 어머니 초상화를 걸어 놓고 항상 어머니를 그리워 하며 어머니의 삶을 본받기 위해 마음을 다진다고 했다.
이 같은 어머니의 무언의 가르침이 그가 지난 5월 5일에 써 놓은 ‘아날로그의 마지막 실행’이란 글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이땅에 태어나 살아가면서 이런 가게 한번쯤 해 봤으면 했었습니다.넘들이 1%의 성공확율도 없다 하지만 그래도 행복을 느낍니다.)
그는 지난 1979년부터 어머니의 고향인 이 지역에서 살겠다고 마음먹고 그때부터 하나 하나 준비를 해 왔다. 팔현리에 14만8천760㎡의 임야를 구입해 잣나무를 심었으며 2008년부터는 무인가게를 만들기로 하고 땅을 구입하고 건물을 짓기 시작해 2012년에 완공한 후 2013년 5월 1일에 오픈했다.
-“맑은 영혼을 드립니다”-
신씨는 기자가 굳이 또다시 묻는 무인가게를 연 이유에 대해 “산책하는 사람이나 등산객들에게 물이라도 마시며 쉴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외지인들에게는 내가 사랑하고 살고 있는 남양주에도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며 “맑은 영혼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런 마음으로 열어 놓는 무인가게는 하루에 기껏 2~3만원,주말에는 5~6만원 매상이 전부이다.
돈을 벌기 위해 한 것은 아니지만 수시로 물건값을 내지 않고 그냥 가져가는가 하면 거스름돈까지 몽땅 털리기도 일쑤여서 주위로부터 ‘미친놈’ 소리를 듣기도 한다.
이런 일을 겪게 되면 돈이 아까운 것이 아니라 마음이 상하는 것이 문제였다. 신씨는 언제까지 무인가게 문을 열어 놓아야 할지 고민하면서도 오늘도 환한 얼굴로 문을 열어 놓는다.
후배가 설치해 놓으라고 CCTV를 주었지만 “카메라까지 달면서 운영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무인가게를 다녀간 사람들이 블로거에 올려 놓은 글중에는 “…참 아름다운 공간입니다.…팔구천원하는 커피는 아깝지 않게 마시면서 왜 이런곳은 외면하는 지 모르겠어요. 낙서하고 도둑질 하고…” 라며 안타까운 심정을 밝힌 글도 있다.
또 “…세상에...눈물이 날뻔했어요~ …각박한 이 세상에 정말 뭉클합니다. 쉼터를 제공하고, 편안함을 주셔서...”, “저희 동네에 이런 명소를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등의 글이 그나마 신씨에게 힘이 되고 있는 듯하다.
-지금도 항상 마음속으로 사모곡을 부르고 있다-
신씨는 지난 1998년도에 자신의 땅인 팔현리 230번지에 조병화 시인의 ‘어머니 당신은 지금 사람의 눈으로 보이지 않는 세상에 계시옵니다...’로 시작되는 ‘어머니 당신은 지금’이란 제목의 시를 가로 7m,세로 1.2m 규모의 대형시비(詩碑)로 제막하는 등 지금도 마음 속으로 사모곡을 부르고 있다.
베푸시는 삶을 살아 오신 어머니가 롤모델인 신씨의 어렸을때 꿈은 돈을 벌면 고아원이나 양로원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신씨는 무궁화꽃이 대우받는 나라, 국경일에는 받드시 곳곳에 국기가 게양되는 나라이길 바라는 국가관도 투철한 ‘영혼이 맑은 아날로그 인’이다.
이 같은 신씨의 마음이 이곳 무인가게를 통해 퍼지면서 이 무인가게도 오랫동안 문이 열려 있고 우리나라 곳곳에 또다른 무인가게가 많이 생기길 기대해 보면서 발길을 돌렸다.
/남양주=이화우기자 lhw@kg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