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삼광사 승려와 신도들이 지름 5m 높이 1m의 초대형 가마솥에 4만명이 먹을 수 있는 동지팥죽을 쑤어 이웃과 함께 나누어 먹었다고 해서 화제다.
또 도내의 여러 백화점과 편의점에서도 동짓날을 전후해 동지팥죽 매상이 예년에 비해 650%나 증가해 상인들이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니 반가운 일이다.
전자의 경우는 동짓날 축제의 압권이라 할만하고, 후자의 경우는 예년에 없었던 동짓날 특수(特需)라 할만하다.
동짓날이라고 모두 팥죽을 쑤는 것은 아니다. 동짓달 초순에 동지가 들면 애동지라하고, 중순에 들면 중동지, 그뭄께 들면 노동지라고 하는데 애동지에는 팥죽을 쑤지 않았다. 까닭인즉 애동지에 팥죽을 쑤어 먹으면 애기가 병에 걸리거나 언짢은 일이 생긴다는 속설때문이다. 올해는 노동지라 팥죽의 인기가 상종가를 기록할 수 있었다.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보면 공공씨(共工氏)의 망나니 자식이 동짓날에 죽어 역신(疫神)이 됐는데 살아 생존에 팥을 무서워 했다고 한다. 그 역신을 쫓기 위해 쑨 것이 팥죽이었고, 이후 동짓날에 동지팥죽을 쑤어 먹으면 악귀를 몰아낸다는 속신이 생겨난 것이다.
민가에서는 동지를 작은 설이라고 했다. 동지와 관련된 속담도 많다. “동지를 지내야 한살 더 먹는다.” “동지팥죽을 먹어야 제 나이를 한살 더 먹는다.” 등에서 알 수 있듯이 동지는 한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송구영신(送舊迎新)의 뜻이 있다.
“동짓달은 막달이라/ 동짓달을 잡아드니/ 절기는 벌써 내년이라./ 동지팥죽 먹고 나서,/ 나이는 한살 더 먹어도,/ 임은 날 찾을 줄 왜 모르노.” 경상북도 안동지방의 민요 한 대목이다.
올 겨울은 유난히 을씨년스럽다고들 말한다. 하기야 불안과 갈등과 실망뿐이었으니 무리도 아니다. 그러나 내일까지 포기할 수는 없는 일. 힘 낼지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