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상이 온통, 성완종리스트로 떠들썩하다. 거명된 정치권 인사들은 연일 사실무근임을 외치며 좌불안석이다. 청와대는 성역 없는 수사를 천명했고 검찰도 칼을 빼들었다. 정국이 마치 태풍전야 같다. 이를 보며 다음과 같은 고사(古事)가 절로 생각난다.
중국 양(梁)나라 때 문선(文選)이라는 책이 있다. 거기에 실린 고악부편(古樂府篇)엔 군자가 세상을 살아가는 몸가짐을 말한 군자행(君子行)이란 노래가 있다. ‘군자방미연(君子防未然)/불처혐의간(不處嫌疑間)/과전불납리(瓜田不納履)/이하부정관(李下不正冠).’ 즉, ‘군자는 재앙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할 지혜가 있어야 하며, 혐의를 받을 일이나 그런 곳에는 처신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외밭에서 신을 고쳐 신지 말아야 하며 오얏나무 아래서 갓을 고쳐 매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남의 의심을 살 만한 일은 안 하는 게 좋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평범한 진리다. 하지만 그렇게 처신하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한번 받은 의심을 해명하려면 죽기보다 힘들다고 하는데도 말이다.
중국 전한(前漢)시대의 학자 유향(劉向)이 편찬한 열녀전(烈女傳)에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다. 춘추전국시대 주(周)나라에 주파호(周破胡)라는 간신이 있었다. 그는 실권을 거머쥐고 국정을 마음대로 농단했다.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성실하고 청백한 신하들도 모조리 추방했다. 정치가 제대로 될 리 없었다.
이를 보다 못한 위왕의 후궁 우희(虞姬)가 주파호의 횡포를 고했다. 그리고 북곽 선생이라는 충신을 천거했다. 우희가 자신을 내쫓으려고 한다는 말을 들은 주파호는 오히려 우희와 북곽 선생이 불륜관계라 모함을 했다. 이 말을 들은 위왕은 그 즉시 우희를 감옥에 가두고, 심문했다. 그러자 우희가 말했다.
‘신첩의 결백은 푸른 하늘과 밝은 해와 같습니다. 만약 신첩에게 죄가 있다면 그것은 과전불납리 이하부정관이라 했듯 남에게 의심받을 일을 피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의 진실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것도 신첩의 부덕함입니다. 죽음을 내리신다 해도 더 이상 변명치 않겠사옵니다.’ 성완종리스트에 오른 정치인들은 과연 어떤 마음일까. /정준성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