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것에는 순서가 있다. 앞에 할 일과 뒤에 할 일이 있는 것이다. 만약 그 앞뒤를 바꿔서 진행하려 하면 일 자체가 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옛말에 ‘급하다고 바늘 허리에 실 꿰어 쓰려한다’는 말처럼 자신의 필요에 따라 순서와 과정은 몽땅 생략하고 일을 추진하는 경우가 종종 벌어진다. 심지어 국가 정책과 같은 큰 안목으로 풀어 갈 일들도 오로지 눈에 보이는 결과만을 중시하는 성과지향주의적인 발상으로 앞뒤를 가리지 않고 정책이 추진되는 경우도 많다.
눈 앞에 보이는 현상이나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기 위해 앞뒤 가리지 않고 졸속으로 일을 추진하다보니 아예 거꾸로 된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무예수련에서도 이런 순서와 관련한 문제가 자주 발생한다. 대부분 수련인의 근시안적인 욕심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으로 단순히 수련의 성과를 높이지 못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몸을 다치게 하는 일까지 생기는 것이다. 어떤 무예든 간에 기본적으로 신체의 역량을 강화하거나 유연성을 높이는 것부터 무예는 시작된다. 그 무예를 담는 그릇인 몸을 체계화시키는 것이 근본이다. 자기 스스로가 자신의 몸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안에 아무것도 담을 수 없다.
이런 이유로 전통시대에도 무예를 수련하는 기본 순서에 대하여 ‘신보수검(身步手劍)’이라는 경구로 그것을 설명하기도 하였다. 먼저 ‘신(身)’은 자신의 몸과 상대의 몸을 말하는 것이다. 자기 ‘몸’의 한계가 어느 정도이며, 그 ‘몸’에서 분출시킬 수 있는 힘의 역량이 어느 정도인지 스스로 고민하고 키워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신의 ‘몸’을 통하여 상대의 ‘몸’을 이해할 기본 개념을 만드는 것이다.
둘째, ‘보(步)’ 즉, 걸음걸이다. 자신의 몸을 이해한 후에는 그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두 다리를 사용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걸음은 단순히 다리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두 다리의 움직임을 통하여 몸통이 안정되게 유지할 수 있도록 신체의 조화를 찾아 나가는 것이다. 어린 아이들이 걸음마를 배우면서 수없이 넘어지는 이유 또한 그 조화를 찾아가는 과정인 것이다. 거기에서 핵심은 척추를 바르게 세워 몸의 중심을 잡아가는 것에 있다. 몸이 바르게 세워지지 않으면 몇 걸음을 걷지 못하고 중심이 무너지게 된다. 이런 기본적인 보법 수련을 통해 이후에는 빠르게 달려도 넘어지지 않는 중심이동법을 익히게 된다.
셋째, ‘수(手)’는 손과 팔의 사용이다. 상대와 맞서기 위해서 가장 먼저 익혀야 하는 것이 손의 활용이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서로 일정한 거리에 서서 주먹과 주먹을 견주는 것이 공방의 시작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상대의 주먹을 방어하기 위하여 팔로 막거나 다른 주먹을 내뻗는 동작을 통해 상대와의 호흡을 주고받게 된다. 이후 좀 더 근접거리로 들어서면 손을 이용하여 상대의 팔이나 옷깃을 붙잡아 펼치는 유술기의 형태로 발전하는 것이다. 여기에 다리를 이용하여 공격하는 발차기 형태의 족술(足術)이나 각술(脚術)이 더해지면 맨몸을 이용한 공방의 기법을 안정화시킬 수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배우는 것이 ‘검(劍)’ 즉, 무기술이 된다. 자기 신체의 공격력과 방어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 무기라고 하는 연장을 손에 쥐고 공방법을 수련하는 것이다. 손에 쥐고 있는 무기는 신체의 연장선에서 이해해야 한다. 상대와 보다 먼 거리에 겨루기 위해서 창이나 봉과 같은 긴무기를 수련하기도 하고 좀 더 짧은 거리에서 승부를 보기 위하여 도검이나 짧은 단도 같은 근접전형 무기를 연마하게 된다. 이러한 무기술의 바탕은 자신의 신체를 바탕으로 하기에 신(身), 보(步), 수(手)와 관련법을 차례로 익히지 않을 경우 사용상의 제약이 따른다. 심지어 자신이 휘두른 무기로 자신이 다치는 자해법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세상일이 다 그렇다. 잘 걷지도 못하는데 달리려고 하면 자신의 무릎팍부터 깨진다. 그렇다고 해서 평생 걷기만 하고 달리지마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한번 넘어졌으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천천히 걸으며 과정과 순서를 곱씹어보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