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때쯤이면 시골 친구들과 마을 뒷산에 올라 만개한 진달래꽃을 따던 기억이 난다. 배고픈 시절이던 까닭에 탐스러운 꽃송이는 어느새 입으로 향하고 달콤함에 침이 가득 고였다. 한참을 먹다 보면 배고픔을 달래는 한 끼 식사로도 충분했다. 덕분에 손과 입술은 진달래꽃 색소로 붉게 물들고 그 손으로 이마난 땀을 훔치며 더 신이 나 꽤나 뛰어 놀았다. 그리고 어스름 저녁 무렵, 한 아름 가지를 꺾어 집으로 돌아올 때 들리던 두견새의 구슬픈 울음소리와 꺾어온 진달래를 장독 큰 항아리에 꽂아 두고 오래오래 감상하던 기억도 새롭다.
진달래꽃을 보며 어린 시절이 생각나는 건 나뿐만이 아닌가 보다. ‘울긋불긋 꽃대궐…’을 읊조리지 않아도 고향을 느낀다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다.
진달래꽃은 우리나라 전역 어디서나 쉽사리 볼 수 있는 꽃이다. 해마다 봄이 오면 온통 앞·뒷산이 진달래꽃으로 뒤덮여 분홍으로 물들어서다. 고향을 떠나 있는 사람들이 고향 뒷동산에 아름답게 피어 있을 진달래꽃을 떠올리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곳에는 영락없이 어린 시절 이산 저산을 헤매며 진달래꽃을 꺾던 추억이 깃들어 있고.
따라서 진달래는 고향을 그리워하고 옛날을 회고하는 감정을 상징으로 여긴다. 같은 고향 사람끼리 모였다가 헤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부르는 노래 속 꽃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우리의 실생활에 깊숙이 관여한 꽃으로, 고향을 그리는 마음의 쉼터에도 항상 등장하는 꽃이기도 하다. 그래서 특별한 그리움의 꽃으로 언제나 우리 가슴에 있다.
사실 진달래꽃에는 슬픈 전설이 내려온다. 두견새와의 깊은 인연에 관한 얘기다.
옛날 중국 촉(蜀)나라의 임금 망제(望帝)는 이름을 두우(杜宇)라 하였다. 위(魏)나라에 망한 후 그는 도망하여 복위를 꿈꾸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억울하게 죽어 그 넋이 두견새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한을 품고 밤마다 이산 저산을 옮겨 다니며 처절하게 운다는 것이다.
두견새는 밤에 우는 새다. 그것도 한밤중에 모두가 잠들어 있는 그 시각에 홀로 깨어 운다. 길게 여운을 그리며 끝없이 되풀이되는 그 처량하고 구슬픈 울음 속에는 자기 가슴을 쥐어뜯는 서러움이 담겨 있다고도 얘기한다. 어디에도 하소연할 곳이 없어 모든 생명이 휴식하는 그 밤중에 그 어두운 밤을 견디기 위하여 울고 또 울어 밤을 지새우는 것이다.
두견새는 울 때마다 피를 토하고 그 피를 또 도로 삼킨다고도 한다. 두견새가 토해낸 그 원한의 피가 진달래꽃잎에 떨어지면 그 꽃잎은 빨갛게 물이 든다고 한다. 두견새가 토한 피로 물들여진 꽃, 그것이 두견화 즉 진달래라는 것이다.
두견새와 진달래는 이와 같이 피로 이어진 인연이기에 진달래에는 두견새의 한이 서려 있고 두견새의 혼이 담겨 있는 것이다. 따라서 두견새의 울음소리가 원한의 상징이듯 그 피로 물들여진 진달래꽃도 정과 한이 서린 꽃으로 문학에 자주 등장한다. 두견새와 진달래꽃은 서로 짝이 되어 오랜 세월을 두고 시의 소재가 되어 수없이 읊어져 온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진달래꽃을 숱한 고난과 비애를 겪으면서도 이를 극복하고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며 끈질기게 살아온 우리 겨레의 기질과 닮았다고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많다. 진달래는 메마르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 꺾이고 또 꺾이고 송두리째 잘려나가도 모질게도 땅에 뿌리를 박고 억세게 피어나고 또 피어나서라고 한다.
하지만 유년의 기억을 새롭게 하는 진달래를 보며 올해는 유난히 피맺힌 한이 땅에 떨어져 붉어졌다는 내용이 떠오른다. 특히 봄이 되어 핏빛 같은 진달래를 보면 더욱 슬피 운다는 두견새와 두견새가 한 번 우는 소리에 진달래꽃이 한 송이씩 떨어진다는 사연이 뇌리에 남는다.
지금 성완종 리스트에 거론되는 정·재계 관계자들, 그들은 앞산에 핀 진달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두견새도 함께 생각할까? 사자(死者)의 원한 맺힌 울음소리가 총리를 사퇴시키고 앞으로도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의 명예를 떨어뜨릴지 모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