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선인장
/김선태
어느 날 아침
어린 선인장이 태어났다
말라 쭈글쭈글한
몸통마저 잘린 모체의
맨 끝 모서리를 박차고
불쑥,
고개를 내밀더니
뛰쳐나왔다 어린 선인장이
고 손바닥만한 것이
가시 면류관을 쓰고
허공으로 걸어가더니
아장아장 길을 내었다
초록의 길을 내었다
그리하여,
다시 어느 날 아침
꽃을 피웠다 어린 선인장이
안간힘으로 끙끙대더니
활짝,
핏방울 같은
붉은 울음을 피웠다
날비린내 가득한
그날 아침은
다른 아침이었다
봄이다. 생명의 함성이 땅에서도 공중에서도 들려오는 듯하다. 이 시는 우리에게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출발이 얼마나 힘겨운 시도인지 어린 선인장을 통해 실감나게 보여준다. ‘가시 면류관을 쓰고’ ‘허공으로’ 걸어가야 하는 ‘초록의 길’. 그리고 언젠가 ‘안간힘으로’ ‘핏방울 같은 붉은 울음’ 꽃을 피우는 선인장. 누구나 한 번은 그런 ‘날비린내 가득한’ 아침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박설희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