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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구 칼럼]사월의 끝

 

초등학교 시절, 독립운동과 어린이날의 의미도 모른 채, 삼월에는 유관순누나를 생각하는 노래를 불렀고 오월에는 푸르른 우리들(어린이)의 세상을 노래했다. 성인이 된 후 엘리어트가 사월은 잔인하다고 노래(황무지 시)한 의미와는 별개로, 살다보니 사월은 정말 그랬다.

사월 끝자락에 세월호 유가족은 형용할 길 없이 잔인했던 일 년 전의 아픔을 평생 안고 살아갈 것이며, 성완종과 관련된 정치인들은 이 잔인함이 어서 끝나주기만을 바라고 있을 것이다. 결국 목숨까지 불사하겠다던 총리는 사표를 내고 말았다. 일 년 열두 달 처절함과 아름다움이 겹치고 교차해 가며 인생과 세상을 꾸려간다. 대부분 잔인한 사건들은 고의든 실수든 사람들이 만들어낸 인재로 인한 것들이다.

사월의 끝자락에 잔인함이 종결되고 모두가 오월의 연초록 상큼한 아름다움을 맛보아야 하는데 국내의 정경유착은 일 년 열두 달 내내 국민들에게 추잡함만 보이고 있다. 얼마나 더 성완종 사건과 같은 일이 더 반복되어야만 온전한 대한민국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상상이 결국 망상이라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 잔인한 것이다.

얼마 전 싱가포르의 이광효 수상이 사망했을 때 대한민국 정치인들은 존경하는 분이 돌아가셨다고 그 나라까지 직접 조문을 다녀왔다. 존경한다면 그 분의 정신과 행동을 본받아 행동해야 옳다. 존경심과 자신의 행동이 다르다면 무엇을 존경한다는 것인지. 그 분은 깨끗한 사람인데 대한민국 정치인으로 평생 온갖 것을 다 누리고 싶어 하는 한 계속 부패해야만하기 때문에 정치인이 깨끗하고 상큼한 것이 특이해서 존경한다는 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국민들은 OECD 국가들 중에 대한민국의 부패순위를 알면서도 성완종 사건이 터져도 빙산의 일각이려니 하면서 놀랄 것도 없이 그러려니 한다. 또 정치인들은 이러한 사건을 자신의 선거운동에 이용한다.

부정을 알면서도 이를 쇄신하려는 욕망이 없는 것은 부패하지 않은 것은 무능한 정치인인 듯 정가에 유전처럼 내려오는 도덕불감증의 역사 때문이다. 사기꾼은 잡히지만 않으면 매우 유능한 사업가로 보일 수 있지만 잡혀도 바로 풀려나오는 것도 또한 사기꾼의 능력이다. 진정한 사기꾼은 파출소조차 가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대한민국에서 진정한 기업인과 진정한 사기꾼과 진정한 정치인은 어떤 방식으로든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왔다. 그러니 청문회를 백번하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부도덕부패불감증은 이미 정치인들의 핏속에 DNA로 전이되고 말았다.

탐관오리로 인해 상처받고 가난했던 나라, 그래서인지 권력을 옆에 두지 않고서는 사업을 확장해 가기에 불편한 나라, 그렇게 취득한 이윤의 행방이 불명확한 나라, 기업의 후원 없이는 정치인이 되기 어려운 나라, 교육은 백년대계라고 하면서 하루가 멀다 그 정책이 바뀌는 나라, 출산을 하고 싶어도 양육비로 갈등하는 나라, 대학을 나와도 수 년 동안 헤매야 겨우 밥벌이를 할 수 있는 나라, 과거의 기억을 순식간에 망각하는 나라, 1세계 국민들에게는 대단히 친절하며 3세계 국민에 대하여는 차별이 아주 두드러지는 나라, 똑같은 재난을 되풀이 하는 나라, 순식간에 신도시가 형성되는 나라, 다리와 백화점이 무너지는 나라, 배가 침몰하면 선장부터 탈출하는 나라, 안전 불감증 나라, 건강염려증 나라… 대부분 국민들이 동감하고 있을 대한민국의 이미지일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이 개발도상국으로서 겪어야할 과정들로 여기고 자위하면서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예쁘게 그리는 나라, 여전히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살면서 국위를 선양하는 민족, 갑자기 잘 살게 되면서 세대 간의 문화적 간극이 극심한 나라, 참 파악하고 진단하기 어려운 나라이다.

그러나 그 알 수 없는 긍정적인 힘이 또 오늘의 대한민국인 것이다. 그래도 상큼한 오월을 맞이하기 위해 싱그러운 통과의례를 하는 사월의 끝자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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