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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기차와 핸드폰

 

봄을 채 느끼기도 전 여름이 들어찼다. 꽃 진 자리 작은 멍울처럼 열매가 생기고 푸른 것들이 무성하다. 들녘의 모내기를 준비하는 손길로 분주하고 무논엔 개구리 울음으로 찰랑거린다.

무심히 보았던 꽃들이며 푸른 것들을 보면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 나무껍질을 찢고 올라오는 새순들이며 홀씨를 날리는 민들레의 둥근 포자가 신비로워 한참을 들여다보곤 한다.

요즘은 살면서 감사하는 일이 많아졌다. 아니 많아졌다기보다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게 된다. 작은 일에도 감사하게 되고 다른 사람의 기쁨을 보아도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을 보면 세월 탓인가 보다.

얼마 전 딸아이 때문에 얼마나 가슴을 졸였는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서울로 취직을 했다. 취업을 못해 전전긍긍하는 세태 속에서 전공을 살려 한 번에 원하는 직장을 얻었으니 이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운 일인가.

직장생활 한달정도 지날 무렵 회사에서 신입사원 환영식을 한다며 좀 늦는다고 한다. 평택에서 서울까지 통근을 하다보니 늘 시간에 쫒기지만 그래도 부모품을 떠나는 것보다는 좀 힘들어도 집에서 통근을 하는 것을 원했다.

회식이 있는 날도 막차 기차를 타고 오겠다고 연락이 왔는데 혹시나 싶어 전화를 걸어보니 통화가 되지 않는다. 평소에 술을 먹지 않는데 자리가 자리인 만큼 마냥 거절하기는 어려웠을 거라는 생각도 들고 혹여 술에 취했으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이 생겨 자꾸 전화를 해보지만 좀처럼 연락이 되지 않는다.

평소 아이의 성격이나 품행으로 보아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것은 뭔가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조바심과 걱정에 별별 상상을 다 했다. 분명 막차를 탔으면 연락이 왔을 것이고 혹여 차를 놓쳤더라도 연락이 왔을 것이다. 자꾸 불길한 쪽으로 마음이 갔다. 수십여 통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남편과 막차 도착시간에 맞춰 역으로 가려고 나섰다. 아예 서울로 갈 채비를 하고 나서는데 낯선 전화가 왔다. 가슴이 덜컹했다. 딸애의 목소리다. 기차에서 잠이 들어서 평택에서 못 내리고 천안에서 내렸는데 허둥지둥 내리다 보니 전화를 잃어버린 것 같다고 했다.

택시를 타고 기사분의 전화를 빌려 사용하는 중이라고 했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초췌해진 모습으로 미안해하는 딸이 안쓰러웠다. 잃어버린 핸드폰은 혼자서 울 뿐 받는 사람이 없다. 사례하겠다는 문자를 남겼지만 소용이 없었다. 전화 속에 들어있는 정보들 때문에 걱정이 컸지만 새로 전화기를 장만했다. 며칠 후 기차에서 전화를 습득했다는 연락이 왔다.

기차에 충전기가 있는데 그곳에 전화가 있었다는 것이다. 김천 지나 아포역에서 근무하시는 백진선 철도원께서 전화를 하셨다. 기차에서 물품을 분실을 하면 종착역에 연락하면 찾을 수 있다는 설명과 함께 얼마나 걱정이 많았느냐고 오히려 위로를 해주신다.

핸드폰이 충격이 가지 않도록 단단히 포장을 해서 택배로 보내주셔서 감사히 잘 받았다. 요즘은 중고 핸드폰도 고가로 매입하기 때문에 찾기 어려울 거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친절한 분이 계시니 얼마나 훈훈한 일인가.

얼마 전 고액의 수표를 주워 주인을 찾아주면서 이런저런 일화를 남긴 사람도 있지만 백진선 역무원님께 다시금 감사드린다. 사회에 첫발을 딛는 아이도 큰 경험과 반성을 했을 것이고 또한 우리사회가 훈훈하고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 기회가 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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