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다수를 위한 다수의 정치이면서 동시에 합리성의 제도다. 따라서 여러 사람들이 토론에서 합의에 이르려면 서로 다른 의견을 존중하는 문화와 합리적 의식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동양사회는 역사적으로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자본주의라는 근대의 과정을 거치지 못하고 유교적 왕권주의에서 현대로 직접 뛰어넘었기 때문에 민주주의의 외피는 갖췄지만 문화로서의 민주주의는 책에서 배울 수 있는 지식수준에 머무르게 되었다. 그 결과 우리는 근대화를 추구하면서 전통적인 인습의 질곡에서 벗어난 것도 많지만, 정치적 사회적으로 토론과 타협과 협상을 통하여 통합할 수 있는 민주주의문화는 만들지 못하였다.
전통적인 유교적 왕권사회에서는 상고주의(尙古主義)라는 정신적 공리에 입각한 원리주의가 있었기 때문에 토론에서 의견을 주고받다가도 문제가 있으면 그 자리에서 해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집에 가서 책을 보고 맞느냐의 여부를 결정해야 했다. 이런 원리는 정치에 있어서도 「유교적 원리와 선왕(先王)의 유지(維持)」를 그대로 받들어야 했기 때문에 미래를 위한 개혁은 금기시할 수밖에 없었다. 정당정치에서 진영논리에 빠져드는 것은 이런 문화와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우리 정치와 관련해서 또 하나의 문제는 부모에 대한 효(孝)를 천리(天理)라고 하여 공(公)으로 보았기 때문에 공(公)과 사(私)의 구분을 어렵게 하였다. 근대 서구의 사회이념은 어떻게 하면 여러 사람들이 충돌하지 않고 공존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공공(公共)의 문제였지만, 유교적 원리에서는 어떻게 하면 개개인의 수신(修身)을 통한 도덕국가를 실현할 것인가가 문제였기 때문에 정치가 도덕에 매몰되고 말았다.
유교적 전통국가에서는 벼슬을 해서 관아에 나가는 출사(出仕)가 부(富)와 권력을 획득하는 수단이었기 때문에 자식을 교육시키는 것은 부모로서의 당연한 도리이고 자식이 출세하는 것은 가문과 부모에 대한 효의 기본이었다. 이런 문화의 배경은 관리들이 백성을 수탈하는 것은 어느 의미에선 당연한 양해사항이었으며, 우리 정치문화에서 양보와 타협을 지조 없는 행동으로 매도되어 극한대립을 하는 것 등도 선비들의 대쪽 같은 절개로 숭상하는 문화와 무관치는 않을 것 같다.
민주주의에서는 이념이나 개인적 신념은 어느 누구도 독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독선과 아집(我執)은 민주정치의 병폐로서 투쟁과 파국에 이르는 지름길일 뿐이다. 민주주의와 그 작동원리는 대부분이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고 양보하면서 합의에 이르는 것이다.
성숙한 민주주의는 최선이 안 되면 차선을, 차선이 안 되면 차 차선을 선택하면서 서로 양보하고 인내하는 것이다.
우리의 내면 깊숙한 곳에는 아직도 유교주의의 의식을 지우지 못한 채, 최근에 와서는 관계적인 인간관을 내세워 끈끈한 의리(義理)와 각종 관계(關係)를 당연시 하려는 경향까지 보이고 있다. 의리의 사전적인 의미는 ‘①신의를 지켜야 할 교제상의 도리, ②혈족이 아닌 사람들이 혈족관계를 맺는 일’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정치를 수신(修身)의 문제와 연결하여 공(公)과 사(私)의 구분을 어렵게 하였던 유교적 이념과 상당히 연관성을 갖는 듯하다. 그래서 우리 사회의 공직자들이나 기업인들이 죄의식 없이 「의리와 관계」를 내세워 부정과 부패에 쉽게 빠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민주사회에서는 「의리나 관계」는 ‘공적 자산을 사적으로 전용하는 인맥자산’이라고 하여 부정부패의 전형으로 본다. 일본의 시미즈 히로시((淸水博)씨가 쓴 「장소의 사상(場の 思想)」이라는 책에 보면, 사람에게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유연하게 모습을 바꾸는 부분과, 좀처럼 바뀌지 않는 부분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것은 마치 여러 개의 계란을 깨서 한 그릇에 담으면 흰자끼리는 유연하게 섞기는 데, 노른자는 좀처럼 섞기지 않는 것과 같다고 했다.
‘의리 중심의 전통적인 인간관계’란 민주사회를 파괴시키는 악습인데도 그것을 쉽게 못 버리는 것도 아마 그런 원리가 아닌가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