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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구의 世上萬事]안심하고 먹을 게 없는 세상

 

몇 년 전 아내가 대수술을 했다. 여성 호르몬의 부족과 갱년기 증상이 찾아오게 됐다. 우연히 홈쇼핑 채널을 돌리다가 아내의 똑같은 증상을 개선한다는 상품광고에 눈을 번쩍 떴다. 그것도 이름을 대면 다 아는 수원 출신의 유명 방송인이 상품을 소개하는 진행자로 등장했기에 더욱 그랬다. 그걸 3년째 빠짐없이 먹었다. 효과를 보고 있다는 아내의 말에 기분이 으쓱하기까지 했다. 중년을 넘긴 아내를 위한 최고의 선물이라며 주변 사람들에게 적극 추천도 했다. 정기적으로 검진을 다니는 대학병원의 주치의가 아내에게 물었단다. 병원에서 처방해준 호로몬제 외에 더 먹는 게 없냐고. 000를 사 주어 계속 먹고 있다 하니 최고의 남편이라 칭찬했단다. 은근히 기분 좋았다. 어떤 연유에서인지 의사까지 암묵적으로 추천한 ‘백수오’였다. 감쪽같이 속은 거다. 그동안 사 먹는 데 들어간 돈 수백만원이 아까운 건 제쳐놓고 탈이나 나지 않을까 더 걱정이다.

이른 바 ‘가짜 백수오(白首烏)’ 파동이 먹거리 시장을 불신의 늪에 빠지게 하고 있다. 제조사는 너무 잘 팔리다 보니 3년이라는 재배기간을 기다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식품위생법상 사용할 수 없는 이엽우피소로 만들었다. 이엽우피소의 재배기간은 1년으로 짧지만 간에 독성을 유발하고 신경장애를 일으키며 임신부는 유산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4월 중순 9만원이 넘던 이 회사 내추럴엔도텍의 주가는 현재 1만원 밑으로 추락했다. 결과적으로는 광고에 속은 나의 잘못이지만 모든 홈쇼핑 고객의 충동구매에 경종을 울렸다고 생각한다.

TV 채널을 돌리면 먹거리에 대한 방송이 자주 나온다. 몸에 좋다는 음식들이 왜 그리 많은지 모를 정도다. 이번 백수오 파문에서 보듯이 소비자가 성분을 검증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이를 악용한 홈쇼핑 채널도 매출에만 급급해 허위 과장광고를 일삼지만 문제가 생기면 나몰라라 한다. 2012년부터 최근까지 홈쇼핑에서 판매한 백수오 제품은 2천700억원 어치에 이른다. 전액 환불해주려면 연간 영업이익의 3분의 1, 많게는 절반이 소요될 수도 있다. 제조사를 상대로 구상권을 청구한다 해도 쉽지 않은 얘기다. 홈쇼핑업체 서로가 눈치만 보고 있는 이유다.

가짜 백수오 파동과 같은 불량 먹거리에 대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10여 년 전 ‘쓰레기 만두 파동’으로 온 나라가 들끓었다. 쓰레기로 버려져야 할 단무지를 만두소로 이용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신문의 1면을 장식하고 방송사도 톱뉴스로 보도했다. 백화점, 마트 등에서 팔던 냉동만두의 매출은 급격히 떨어지고 중소 만두 업체들은 추풍낙엽처럼 줄줄이 도산됐다. 유통기한을 넘긴 중국산 김치로 컵라면의 수프를 만들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우리는 그 동안 석회를 넣어 만든 두부를 먹었고 미군부대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로 만든 음식도 먹었다. 톱밥이 섞인 고춧가루에 발암물질 벤젠이 함유된 식용유를 먹기도 했다.

밤 11시나 돼서야 학교에서 돌아오는 고교생이던 아들녀석이 엄마가 해준 인스턴트 만두를 간식으로 맛있게 먹던 모습을 떠올리면 가슴이 미어진다. 며칠 후 뉴스를 봤는지 녀석은 ‘아버지! 제가 먹은 만두도 쓰레기로 만들었나요?’라고 물었다. 그 만두는 괜찮은 거라고 대답했지만 마음은 씁쓸했다.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부르짖는 우리 먹거리의 현주소다. 미국은 백화점이든, 식품을 취급하는 상점이든 전깃불이 10분만 꺼져도 거기에 진열되어 있는 채소와 고기 등은 모두 폐기해야 한다. 식품범죄를 저지르다 잡히면 평생 햇볕을 보지 못하고 교도소에서 생을 마쳐야 할 정도의 중벌로 다스린다. 인간이 사는데 섭생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먹는 것으로 장난치는 자들에게는 법정최고형으로 다스려야 마땅하다는 얘기는 때마다 해왔다. 이를 실천하지 못했을 뿐이다. 앞으로라도 철저한 단속과 수사로 식품관련 범죄를 뿌리뽑아야 할 일이다. 백수오 파동도 또 얼마 지나면 잊혀질 게 뻔하다. 그러나 먹거리 선택에 대한 소비자들의 경각심만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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