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이 아름답고 먼 산에 초록물이 들어 손에 잡힐 듯 다가오도록 아주 잠깐 시선을 보내는 것으로 만족한다. 남들 놀 때 더 바쁜 사람들에겐 꽃도 단풍도 다 놓치는 수밖에 없다.
그날도 바쁘고 힘든 하루를 보내고 있던 참이었다. 잠시 안에 들어왔다 남편이 부르는 소리에 벌떡 일어나 나가려는 순간 불덩이를 밟은 느낌이 들었다. 그대로 구부러져 발끝을 잡은 순간도 기다리는 사람에겐 길었을지도 모른다. 독촉하는 소리에 아픈 발을 끌고 나가서 동동거리며 그때그때 전해 오는 아픔을 묻었다. 일을 마치고 늦은 저녁 식탁에서 먼저 일어났다.
그날따라 모임 있어 늦더라도 꼭 참석을 하기로 되어 있어 약속 장소로 향했다. 걸으면서도 모임 자리에서도 온 신경이 발가락으로 가는 바람에 무슨 얘기를 주고받는지 하나도 둘리지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집에까지 태워다 준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한다는 노릇이 다시 발가락으로 손이 간다.
그래도 남 앞에서 아픔보다 부끄러운 생각에 얼른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들어와 양말을 벗고 보니 상처가 상상보다 훨씬 컸다. 가운데 발가락이 마디가 퉁퉁 부어오르고 피멍이 들어 가지색으로 변해 있었다. 약을 바르고 듣지 않으면 병원에 가 보라는 말을 들으며 그냥 잠이 들었는데 다음 날부터 걸음걸이가 불편했고 가끔 가시를 밟은 것처럼 따끔거리기도 하며 그냥저냥 불편을 견디고 살았다. 그렇게 며칠 견디다 보면 자연스레 상처도 가시고 잊어버리겠지 하고 쉽게 생각했다.
오월은 계절의 여왕이요 가정의 달이기도 하지만 자영업자들에겐 종합소득세 신고의 달이다. 세무소에서 안내문이 도착을 하지 않아 조합에도 문의를 하고 마감 시한을 맞추어야 했다. 발도 아프고 모처럼 대중교통을 이용한답시고 버스 시간을 알아보니 거의 한 시간 반이나 기다려 한 번에 집으로 오는 직행버스를 탈 수 있었다. 그 사이 불쌍한 내 발가락은 답답한 신발에 갇혀 신음을 쏟아낸다.
일 하기보다 더 피곤한 휴일에 머리 손질을 위해 찾아간 미용실에도 환자들이 모였다. 펌을 말고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사람은 무릎 줄기세포 시술을 받고 왔다며 병을 키운 사연을 늘어놓고 연신 경쾌한 손놀림으로 머리를 만지는 미용실 원장은 말씨도 생기가 넘쳤지만 나중에 자꾸 옆구리가 아프다고 해서 까닭을 물으니 늑골에 금이 갔다고 한다. 하루종일 서서 손님을 응대하는 일이 얼마나 힘들지 짐작이 간다.
차례가 되어 의자에 앉으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비명이 새어 나오고 자세가 불안했는지 모두의 시선이 모인다. 결국 발가락 얘기가 나오고 환자들끼리 그동안 참았던 얘기가 이어졌다. 내일이라도 꼭 발가락을 찍어보라는 얘기와 소변 검사 후 종합 병원에 가서 제대로 진찰을 받아보라는 권고도 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치료 자체에 대한 두려움도 그렇고 왠지 민망하고 망설여져서 감추고 방치하는 과정에서 병을 키우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하기야 어린 시절에 이가 흔들리는 것을 숨기다 덧니가 나오는 친구들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렇게 드러내고 치료를 하면 말끔하게 고칠 수 있는 병이 숨기고 미루는 사이에 돌이킬 수 없는 사태를 부르고 있지나 않을지 생각해 볼 일이다. 모든 상처가 진주를 키우는 것은 아닐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