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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구칼럼]가(家), 자(者)

 

2015년 5월11일 피카소(알제의 여인들, 1955억원), 뭉크(절규, 1307억원), 자코메티(포인팅 맨, 1540억원)가 부활하여 뉴욕 록펠러 센터로 돌아 왔다면 아마 자신의 작품 한 점의 경매낙찰 가격에 쇼크를 받고 곧바로 다시 승천했을지 모른다. 피카소는 살아생전에도 그의 작품 값은 엄청난 고가였지만 그밖의 대다수의 화가들은 살아생전 그림 한 점 제대로 팔지 못한 채 가난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비교할 수 있는 장르도 아니지만 베토벤의 악보가 피카소 작품가격 만큼 될 수 있는 날이 올까? 클래식 음악가와는 다르게 대중음악으로 대성한 사람들 중에는 기업을 만들어 음원, 저작료 등 해마다 수억 원, 수십억 원 수입을 올리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미술가들은 살아생전에 아무리 작품의 호(1호가 엽서크기)당 가격이 높다고 할지라도 이렇게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리는 작가는 거의 없다. 가끔 게임, 만화영화, 만화작가들이 상당 수입을 올리고 있다는 이야기도 듣지만 대중음악가들 만큼의 수입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한편 음악처럼 미술도 대중미술과 클래식 미술로 구분할 수는 있겠지만 클래식 음악이든 대중음악이든 피카소와 같이 수입을 올릴 수 있는 음악가는 퍽 드물다는 것이다. 요즘 상당수 청소년들의 꿈은 연예인이나 대중음악 가수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적어도 여기에는 대중적 인기와 고액의 수입, 겉으로 보기에 화려한 생활이 함께 동반하기 때문이다.

십여 년 전 목사가 되고 싶다는 대학생들이 부쩍 증가한 때가 있었다. 국내에서 목회자로 성공한다는 것은 최소 만 명 교인이 출석하는 대형교회를 만든다는 것이며, 이렇게 되면 종교권력을 갖고 연예인처럼 억대 연봉을 받을 수 있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러나 최근 목회자 양성 신학대학원 진학 율이 급감했다고 한다. 직업 선호도가 수년마다 급변하는 것은 일정 허영심을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욕망이 직업 선호도에 작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가까운 일본만 해도 오사카 뒷골목 공장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고, 집안 몇 대를 거쳐 가내 수공업을 세습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최근에는 4대째 내려오는 가내공업가가 현대기술과 접목하여 그만의 독특한 상품으로 선풍을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한국은 어처구니없이 대기업과 대형교회만 자식에게 세습하여 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것과는 아주 대조적이다. 정작 세습해야 할 것은 안하고 해서는 안 될 것만 세습하고 있는 대한민국이다.

지금 일본의 젊은 세대들도 변화를 겪고 있겠지만 그 장인정신은 여전히 자손들에게 DNA로 전승되고 있다. 예술은 그 기질과 창조성의 혈통이 강해서 세습해 왔기 때문에 가(家)를 사용했고 성직은 대체로 1대에서 머물렀기 때문에 자(者)를 사용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예술로 먹고 살기 어려워 자식들은 그 업을 더 이상 잇지 않고 성직은 교인 수까지 인수 받아 세습을 하는 세상이 되었으니 조만간 예술자(者), 성직가(家)로 바꿔야 할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지금은 ‘고시’가 되었지만 과거에는 선생‘질’을 한다고 교직을 비하한 적도 있었다. 양반들이 정해 놓은 업의 귀천에 따라 뒷자리에 어미를 하나씩 붙였는데 시장잡‘배’, 장사‘꾼’처럼 지금은 과거 천하게 여겼던 직업들이 오히려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60-70년대 호황을 누리던 직종은 사라지고 상상도 못했던 새로운 직종들이 나타나고 있다. 일본은 장인정신을 계승하면서 동시에 급변하는 시대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고 있는데 비해, 한국은 자신의 직업에 대한 만족도와 사명감, 보람의 지수가 낮아 자식에게 그 업을 전수하려하지 않고 자식도 그 대를 이으려 하지 않는다. 정부가 직업 창출에 천문학적인 경비를 지출하기 이전에 대를 이어 장인을 양성할 가내공업을 지원하여 가(家)의 인프라 구축을 통해 기초가 튼튼한 국가발전을 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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