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수아비
/양문규
자기 몫으로 거두어 들일
낟알 하나 없이
빈 들판을 지켜 서서
왼종일 찬 바람에
마른 목을 서걱이누나
출렁이는 나락 물결
발목을 포근히 감쌌던
못물들 다 빠져 나가고,
쭉정이 흩날리는 맨땅에
홀로 서서 지는 해 바라보누나
몸뚱이 팔 다리에
피를 끓게 하던 새떼들
그림자도 보이지 않고
오직 싸늘한 기운만 안은 채
흐느적거리는 허수아비
한 점 바람에 기우뚱거리누나
여름이 무겁다 시골 들녘에서 팔순노인의 모습이 그렇고 작은형 내외가 힘겨운 인삼밭 작업이며 조카의 늦은 농사의 길잡이가 그렇다. 무성한 잎새를 달고 짙은 옥음을 자랑하는 플라타너스 나무도 펄럭이는 기운이 넘치지만 한쪽 날개를 잃은 듯 진지한 글을 쓴다. 지나간 삶들을 다시 한 번 뒤돌아보는 사간을 보는 일이 여유롭지 않다. 빈 들녘에 외롭게 서 있는 허수아비처럼 초라한 시간들이 우리에게도 있고 필자에게도 있다. 새떼를 쫓기 위해 말없이 노래하는 허수아비의 모습이 참 처량하게 느껴지는 시다. 가난한 영혼은 빗물이 고이고, 시심은 사라져 마음의 풍선이 떠난지 오래다. 우리들의 영혼에도 따스한 눈이 내리면 좋겠다. 이 여름, 왠 눈이 그리울까 세상은 보다 넉넉한 사람들로 정겨우면 좋겠다. 이익집단의 삶이 아닐지라도 좌고우면 하지 않는 진솔한 가슴들이 만나는 이야기들로 채워지면 좋겠다. /박병두 시인·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