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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으로 풀어본 무예]한류의 원조, 마상재(馬上才)

 

달리는 말 위에서 일어서기·물구나무 서기 등 이런 자세는 보통 사람들이 생각할 때는 불가능에 가까운 움직임이다. 기계가 아닌 살아 있는 ‘말’이라는 생명체와 호흡을 맞춰서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만드는 것은 그 모습만 봐도 신기할 따름이다. 조선시대에 말과 함께 최고의 무예를 펼쳤던 사람들이 바로 마상재인(馬上才人)이다. 필자가 마상재를 분명히 단순한 ‘쇼’가 아니라 ‘무예’라 언급한 이유는 다름 아닌 최고의 기병 공식무예훈련으로 지정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이 조선통신사 일행으로 일본에 건너가 한류 열풍을 불러 일으킨 조선의 ‘아이돌 스타’였기에 마상재는 더욱 의미있는 무예이기도 하다.

조선후기 임진왜란으로 급격히 악화된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위하여 통신사 일행이 일본에 건너가야만 했다. 보통 서울에서 사절단을 모아 부산까지 이동하는데 2개월이 소요되고, 이후 풍랑이 매서운 바다를 건너와야 하기에 짧게는 8개월에서 길게는 2년이 넘는 오랜 여정이 기다렸다. 부산을 떠난 조선통신사 배는 쓰시마섬을 거쳐 오사카를 지나 수도인 교토를 향해 긴 행렬을 이어갔다. 이때 조선 관리들은 약 500명이 참여했으며, 쓰시마섬에 통신사 호위무사로 약 200명이 보조파견을 나갔고, 현지 길 안내와 짐꾼을 포함하면 모두 1천명에 이르는 대규모 행렬이 만들어졌다. 당시 일본 내지인들은 이 광경을 보기 위해 말 그대로 인산인해의 인파가 몰려들어 먼지가 하늘에 가득하고 벌떼처럼 구경꾼이 몰려들었다고 기록에는 전해진다.

당시 조선 통신사 일행의 글 솜씨를 비롯한 문화적 우수성은 일본인들의 감동을 넘어 존경의 대상이기도 하였다. 특히 조선통신사 일행 중 호위무관으로 일행의 경호를 책임졌던 마상재인의 뛰어난 기마실력은 당대 한류스타 ‘아이돌’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인기 절정이었다. 심지어 당시 일본 최고의 정치군사 지도자인 관백이 직접 통신사의 우두머리에게 다음 사행 때에도 반드시 마상재인과 함께 동참해 줄 것을 간곡히 부탁하기도 했을 정도였다. 이후 1748년 조선통신사의 제술관으로 함께 간 박경행(朴敬行)은 “전쟁터에서 말에 몸을 숨긴 채 적진에 돌입하여 적의 깃발을 빼앗거나 적군의 목을 베어올 수 있는 날랜 재주를 지닌 사람이 우리나라에 사오백 명은 된다”라고 하며 마상재의 무예적 본질을 일본 사람들에게 알려주기도 했다. 또한 관백이 타는 말을 조선 마상재인들이 직접 특별 조련을 시켜줬는가 하면, 통신사들이 귀국할 때에는 마상재에 사용했던 조선의 명마를 달라고 애걸복걸하며 하도 졸라서 몇 마리 선물로 주고 오기도 할 정도였다.

조선의 22대 국왕인 정조는 국방력 강화를 위하여 당시로는 최고의 특수부대로 칭했던 ‘장용영(壯勇營)’을 만들었다. 이들은 요즘의 특전사나 공수부대처럼 강인한 체력과 전투력을 무장할 수 있도록 특별한 훈련을 받았다. 특히 전투력이 뛰어난 기병부대였던 장용영의 선기대에는 별도의 특수훈련을 추가하였다. 바로 마상재였다. 정조는 장용영의 부대를 좌초, 중초, 우초의 3초로 나눈 부대 중 선봉대 역할을 한 좌초의 군사들에게 마상재를 반드시 익히게 하였다. 심지어 한 달에 한 번씩 있었던 장용영 내부 무예 시험에 정조가 직접 참여하면서까지 기병력 강화에 신경을 썼다.

근래에 마상재가 무예이니 아니니 하는 논란이 있기도 하다. 당연히 그 모습만 보면 이것은 무예가 아니라 곡예 혹은 기예라고 하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그러나 본인이 직접 다른 마상무예와 마상재를 익혀 보면 그것이 얼마나 우수한 기병 전용무예인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정조가 단순히 마상곡예를 보고 싶어서 그 뛰어난 장용영 군사들에게 마상재를 훈련하라고 명을 했겠는가 말이다. 필자는 지금도 말을 타고 활을 쏘거나 제 몸보다 큰 무기인 월도를 휘두르며 마상무예를 훈련하고 있다. 달리는 말에서 한번 멋지게 일어서보면, 무예의 근본인 담력은 물론이고 중심이동 기술까지 터득할 수 있다. 하물며 땅 위에서야 중심잡기는 말 그대로 식은 죽 먹기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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