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송이 지층
/허만하
모래사장에서 집어 든 흰 조개껍질은 한때 나의 뼈였다.
나는 또 길섶에 피어나 바람을 기다리던 한 송이 패랭이꽃이었다.
나는 한때 물길 밑바닥에 출몰하는 한 마리 연어였다.
흐름 위에 떨어진 그늘이었다.
다시 나는 썰렁한 겨울 들판 한가운데 태어나는 격렬한 바람이었다.
나는 끝내 기슭에 이르지 못한 채 사라지는 물결이었다.
사라진 자리에 눈송이처럼 조용히 쌓이는 싱싱한 시간이었다.
- 시집 〈시의 계절은 겨울이다〉2013년
지금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나의 일부였다는 것, 흰 조개껍질, 패랭이꽃, 물속을 헤엄치는 연어이었다가, 흐르는 것들 위에 떨어진 조용한 그늘이었다가, 다시 썰렁한 겨울 들판 한가운데 태어나는 격렬한 바람이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내 전생의 흔적이 있다. 그 많은 생들이 출렁이느라 높은 기슭에 이르지 못한 채 사라지는 물결로서. 자연으로 돌아간 자리에 눈송이처럼 조용히 쌓이는 생각을 살아서 해보는 싱싱한 시간이었다, 나는 몸을 바꿔가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와 함께 있다. 이 모든 것 속에 깃들어 영원히 존재한다. 이런 생각도 살아있는 동안 할 수 있는 것이다. /신명옥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