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긴 길
/황학주
연년이 내가 많은 비를 맞아 서
나의 속도는 몇 년째 잘 자라지 않았다.
삶의 불이 밋밋한 배에 지피는 중일까
날이 새는 길 위에서
당기는 창자를 가만히 참아보았다.
연년이 내가 많은 비를 맞아서
장작불에 정숙을 피우며
긴 길, 푸릇푸릇한 잡풀의 무엇을 줍고 싶은
긴 길이었다.
몸이 몸의 희망을 버렸는지 모르지만
연년이 내가 많은 비를 맞아서
쓸쓸하게 손이 떨리는 저녁이
홀로 필요했다.
나 이대로
연년이 많은 비를 맞은
이 가슴의 옷을 주워 안고
서향의 길가에 조용히
꽃그늘을 세워놓고만 싶다.
시가 슬픈 것은 삶의 반영일지 모르지만 함축된 그늘에서 외로움들이 찾아든다. 집 밖에서 보고 싶은 햇빛이 병상에 누운 어떤 환기를 고뇌하고 있다. 다들 혼자서 갈 수 없어서 누구와 동행을 삼아 앞날을 개척해 가는 구도자의 길이다. 어떤 길이든 갈 수가 없다는 이 형언하기 어려운 고독감에 비하면 인간의 의지란 대체로 무엇인가. 간다는 것은 무엇이고, 길을 만들어가는 일들이 고달프게 느껴진다. 진보, 변화, 화해, 자아라고도 할 수 없는데 마음의 통일을 이루긴 어렵다. 시간은 길고 세월은 읽을 수 없을 만치 빠르게 지나간다. 한줌의 빛과 기억, 그 기억이 머물 수 있는 햇빛이 있다면 좋겠다.
/박병두 시인·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