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특정 단어 앞에 ‘왕-’이란 말을 덧붙이는 게 유행한 적이 있다. ‘매우, 진짜, 엄청’의 의미로 단어 앞에 이런 말을 덧붙였는데 ‘왕재수’ ‘왕느끼’ ‘왕짜증’ 등등이 그것이다. ‘집단 따돌림’을 가리키는 ‘왕따’도 이때 생겨났다. 의미는 잘 알다시피 사회 집단 내에서 무리를 지어 특정인을 소외시키고 반복적으로 인격을 무시하거나 신체적 폭력을 가하는 일체의 행위를 말한다.
왕따가 제일 성행하는 곳은 학교다. 직장 내에서도 무시 못 한다. 왕따를 당해 본 사람들은 그 괴로움이 상상을 초월한다고 이야기들 한다. 특히 학생들의 경우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경험하며 등교를 거부하거나 극단적으로는 자살을 기도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직장인들은 쌓이는 스트레스로 정신과 치료까지 받는다. 학교와 직장뿐만이 아니다. 동아리모임 심지어 아파트 부녀회에서도 왕따 현상은 존재한다. 따라서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되고 있기도 하다.
일본 사회의 특징인 획일주의와 집단주의를 배경으로 집단 속에서 튀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폭력 ‘이지매’처럼 왕따 또한 마찬가지다. 이를 두고 사회학자들은 차이와 다양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한국 조직 사회의 경직성을 반영하는 현상이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왕따를 지칭하는 단어도 다양한데, 가령 전교생이 따돌리는 것은 왕따, 전학 온 아이를 따돌리는 것은 ‘전따’, 반에서 따돌리는 경우는 ‘반따’, 은근히 따돌리는 경우는 ‘은따’, 심하게 따돌림을 당하는 경우는 ‘진따’라고 한다.
메르스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메르스 진원지로 밝혀진 병원은 물론이고 그렇지 않은 병·의원 근무 의료진과 가족들까지 친구, 이웃으로부터 은근한 따돌림, 즉 ‘은따’를 당하고 있다고 한다.
환란이 깊을수록 서로 협력해야 극복을 빨리 할 수 있다. 나만 괜찮으면 되겠지 하는 냉소적인 개인주의로 일관한다면 공동으로 살아가는 사회의 일원이라 할 수 없다. 오히려 그들이 왕따 당해야 마땅하다. 특히 일부에선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맡은 책임을 다하고 있는데 그들을 격려해주지 못할망정 기피 인물로 낙인찍어 사회적으로 ‘은따’시켜야 되겠는가.
/정준성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