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9.10 (수)

  • 구름많음동두천 29.3℃
  • 맑음강릉 33.1℃
  • 구름많음서울 29.7℃
  • 구름조금대전 30.6℃
  • 구름조금대구 30.8℃
  • 맑음울산 31.3℃
  • 구름조금광주 30.5℃
  • 맑음부산 31.2℃
  • 맑음고창 31.0℃
  • 맑음제주 31.5℃
  • 구름많음강화 28.8℃
  • 구름조금보은 27.9℃
  • 맑음금산 29.4℃
  • 구름조금강진군 30.8℃
  • 맑음경주시 31.7℃
  • 구름조금거제 30.6℃
기상청 제공

 

가뭄 끝에 내린 단비로 씻긴 풍경은 산뜻하고 공기는 상큼하다. 새벽부터 텃밭을 가꾸시던 아주머니께서 금방 뜯은 쑥갓을 들고 오시며 인사 값이라며 함빡 웃으신다. 무슨 세상이 거꾸로 가는지 갈수록 시집살이가 되다고 하소연이시다. 역병보다 독한 메르스까지 들볶아서 살기가 어렵다며 예전에는 남자는 나가서 돈 벌어 오면 여자가 살림하고 아이들 기르고 살았는데 지금은 새벽부터 밤중까지 뛰어다녀도 못 살겠다고 아우성이니 영문을 모르겠다고 하신다. 게다다 아이는 낳기도 전에 누가 키울지 그 걱정부터 하고 있으니 답이 있겠느냐고 하신다. 큰 딸이 결혼해서 직장 생활을 계속하고 있어 첫 아이를 키워 주게 되었다. 그 때는 젊을 때라 쉽게 대답을 하셨고 첫 손자 돌보는 재미에 세월 가는 줄도 모르고 즐겁게 지내셨는데 그게 혹이 될 줄은 상상이나 하셨을까?

작은 아들내외가 다녀가면서 마음 편한 날이 없으시단다. 내색도 못 하고 여러 해 기다린 며느리 임신 소식에 기뻐하셨으나 아이를 맡아서 길러주셔야 한다는 부탁 반 다짐 반의 말을 듣고부터 음식마다 맛을 모르겠을 정도니 어쩌면 좋겠느냐고 물으시는데 별 답을 드리지 못했다. 6·25 전쟁 막바지에 아버지 안 계신 홀어머니 근심 덜어드리라고 작은아버지 중매로 얼굴도 모르고 남의 집 마당에서 초례를 올린 인연이었다. 의식 걱정 안한다는 말에 기대를 했지만 새색시가 부엌에 나가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나서도 쌀을 내줄 시어머니는 한참이 기다려야 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얻어온 쌀로 새색시는 겨우 아침을 지어 상을 차렸다. 시집 오면서부터 층층시하 어려운 살림살이에 여러 남매 낳아서 기르고 가르치며 조상님 제사 받들고 시동생들 치레 끝내나 싶을 때 시어머니 병수발로 허리 한 번 못 피고 살다 이제 팔순 넘어 한숨 돌리나 했는데 무슨 팔자가 내리막도 홀가분하게 가만 두지 않는다고 말끝을 흐리신다. 젊어 고생하던 시절에는 자식 크는 재미, 살림 불리는 맛에 몸 곯는 줄도 모르고 그러려니 하고 살았으니 모자라도 이만저만 모자라는 사람이 아니라고 하신다. 질세라 나도 맞장구를 친다. 그래도 척추 협착으로 수술도 하신 몸으로 육아는 무리라고 말씀을 드리니 멋모르는 바깥양반이 낳아서 데리고 오기만 하면 할 일 없는 늙은이들이 손주 하나 못 키우겠느냐고 인심을 쓰셨다니 저절로 힘이 빠진다. 돈도 버는 사람 따로 있고, 쓰는 사람 따로 있다더니 일도 그런 게 아니냐며 쓸쓸히 웃으신다. 가지고 오신 쑥갓 손질을 마치자 젊었다고 몸 함부로 쓰지 말고 꾀도 부리며 살라고 친정 엄마처럼 말씀하신다. 말씀이야 그렇지만 막상 닥치면 그게 잘 안된다고 하니 마주보고 살다 보니 바보짓도 닮아가나 보다며 하루 날 잡아 바보 동창회라도 하자며 한바탕 웃었다.

나이 탓을 하자는 것인지 몸에서 이상 징후를 느끼기 시작했다. 처음엔 병원엘 갈까 했으나 아침 운동으로 하루를 시작한지 벌써 삼 년째다. 처음에는 할 줄도 모르고 남들 하는 대로 따라 하다 먼저 온 사람들의 도움으로 적응해 나가며 차츰 재미를 붙였다. 그곳에서 각자의 삶의 궤적이 묻어나는 사연들을 접하면서 새로운 친분이 쌓여 운동 후 샤워장에서 매일 같은 시간대에 만나는 사람들과 샤워 동창생이라 부르기도 한다. 산책 동창들도 만난지 오래 되었는데, 이러다 동창회가 너무 많아도 괜찮을지 모르겠네…

 







배너
배너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