喪家에 모인 구두들
/유홍준
저녁 喪家에 구두들이 모인다
아무리 단정히 벗어놓아도
문상을 하고 나면 흐트러져 있는 신발들,
젠장, 구두들이 구두를
짓밟는 게 삶이다
밟히지 않는 건 망자의 신발뿐이다
정리가 되지 않는 喪家의 구두들이여
저건 네 구두고 저건 네 슬리퍼야
돼지고기 삶는 마당가에
어울리지 않는 화환 몇 개 세워놓고
봉투 받아라 봉투,
화투짝처럼 배를 까집는 구두들
밤 깊어 헐렁한 구두 하나 아무렇게나 꿰신고
담장가에 가서 오줌을 누면, 보인다
北天에 새로 생긴 신발자리 별 몇 개
- 유흥준 시집 ‘상가에 모인 구두들’ 에서
이 시에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얻은 상처에 대한 치유적 성분이 함유되어 있다. 삶의 진한향기가 풍겨 나오고 있으며 시와 생명에 대한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이음새 역할을 느낄 수 있다. 문상객의 구두와 망자의 신발에 대한 이미지 효과가 그렇고 ‘짓밟는 게 삶이다’라는 직관적 표현이 그렇다. 망자가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복잡 미묘한 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짓밟힘을 당하고 살았으며 혹은 짓밟고 살아 왔을까? 우리는 이 시간에도 상사와 동료, 후배들을 얼마나 밟고 있는지 깊이 반성해야 한다. /정겸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