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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으로 풀어본 무예]조선시대 대표 무예이자 스포츠, 격구(擊毬)

 

조선시대에 공식적으로 무관 즉 장교가 되려면 과거시험 중 무과(武科)을 보는 것이 가장 빨랐다. 물론 음서(蔭敍)나 천거(薦擧)라 하여 소위 ‘줄이나 배경’을 가지고 무관에 등용되기도 하였지만, 이들은 당당히 무과시험에 합격한 무과급제자와는 격이 다른 대우를 받았다. 이는 당상관이라는 최고의 품계는 오직 과거시험이라는 정규시험을 통과해야만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과시험의 최종시험인 전시(殿試)의 마지막 시험과목이 바로 격구(擊毬)였다. 따라서 격구를 못하면 장원급제는 고사하고 무관으로 등용 자체가 불가능하였다. 격구는 쉽게 설명하면, 말을 타고 펼치는 공놀이의 일종으로 ‘장시(杖匙)’라는 끝이 숟가락처럼 생긴 채로 공을 퍼 담아 골대에 집어넣는 기병용 특수 무예이자 조선시대 최고의 스포츠였다.

1392년,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첫 번째로 직면한 군사적 문제가 바로 북방의 여진족과의 마찰이었다. 당시 여진족은 보병이라는 병종은 아예 존재하지 않고, 오직 기동력이 우수한 기병으로 모든 부대를 구성하여 쉼 없이 조선의 국경을 침범하고 국경 근처의 백성들을 괴롭혔다. 따라서 이에 대항하기 위해서 조선은 기병이라는 병종을 최우선적으로 육성해야만 했다. 요즘으로 치면 사이버 테러 및 전쟁이 급부상하고 있기에 군에서도 발 빠르게 사이버 사령부를 만들고 사이버 군사를 집중 육성하는 방식이었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기병의 무예 즉, 마상무예는 말을 달리며 활을 쏘는 기사(騎射)와 창으로 공격하는 기창(騎槍)이었다. 그런데 전투는 한 개인이 단독으로 펼치는 것이 아니라 조를 이루고 부대가 함께 싸우는 단체전이었기에 격구는 다른 무예보다도 팀플레이 훈련에 가장 좋은 무예였다. 격구는 크게 두 가지 방식이 있었는데, 먼저 한명이 일정한 코스를 따라 다양한 자세를 취하며 말을 달리며 공을 골대에 넣는 방식이 있고, 두 번째로 팀을 나눠 공을 서로 빼앗아 가며 구문에 넣는 방식이 있었다. 바로 두 번째 방식의 경기형 격구가 전술훈련에 많은 도움을 줬었다.

격구에는 다양한 자세가 있었다. 공을 채에 퍼올리기 위하여 이리저리 몸을 비틀어 장시에 담은 후에 원심력을 이용하여 공이 채에서 떨어지지 않게 크게 채를 휘두르는 광경은 그 자체로 묘기에 가까웠다. 거기에 상대편 기병을 따돌리며 공을 떠올리는 자세가 더해지면 박진감 넘치는 스포츠 경기를 능가하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그래서 격구시합이 펼쳐지는 공간에는 늘 수 많은 사람들이 담장을 이뤄 구경을 할 정도로 조선 최고의 군사 스포츠로 각광을 받았다. 여기에 격구 경기를 하는 사람의 쇼맨쉽이 더 해지면 그 야말로 잔치판이 따로 없을 정도였다. 대표적으로 태조 이성계의 격구실력은 요즘으로 치면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축구 스타 박지성을 능가할 정도의 뛰어난 기마술과 격구실력을 갖췄기에 많은 사람들의 칭송을 받을 수 있었다. 심지어 조선의 개국을 찬양하는 노래인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에도 태조 이성계의 놀라운 격구실력이 노랫가사로 담겨 있을 정도였다.

우리에게 상표 이름으로도 잘 알려진 ‘폴로(Polo)’는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서 전통 마상스포츠로 아직까지도 사랑받고 있다. 실제로 영국의 경우는 프로 폴로선수가 있고, 다른 여러나라에서도 프로팀이 만들어져 대항전을 펼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폴로는 사용하는 도구가 일종의 망치형태로 공을 때리는 것을 핵심자세로 하고 있다. 그래서 한번 공을 치고 쫓아가서 공을 또 다시 치는 방식의 경기 진행된다. 반면 격구는 공을 치는 것은 물론이고, 끝이 숟가락처럼 생겨 공을 거기에 퍼 담아 이리저리 휘두르는 것이 가능하기에 폴로보다 훨씬 어렵고 화려한 기술을 담고 있다. 필자도 격구 경기를 직접하고 있지만, 단 10분만 말을 타고 격구 경기를 하면 온 신체가 녹초가 될 정도로 힘들고 어려운 자세로 가득하다.

조선시대에 격구가 최고의 군사무예로 인정받은 결정적인 이유는 다름 아닌 섬세한 기마술연마와 즐기면서 훈련할 수 있는 매력 때문이었다. 비록 조선후기에 접어들면서 화약무기가 대거 전장에 등장하면서 격구가 무과시험 과목에서 제외되기는 하였지만, 격구는 여전히 조선 기병을 대표하는 군사무예였다. 아쉽게 사라져 버려 이제는 박물관이나 문헌 속에만 존재하는 격구가 하루 빨리 복원 및 전파되어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즐기는 스포츠로 발전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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