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밭에서
/임동윤
산국농장이 연분홍빛으로 달아올랐다
수백그루의 나무와 수만 마리의 나비들이
투명한 햇살에 정수리를 내놓고
겹겹으로 불타올랐다, 화르르 화르르
바람으로 날아오르고 있었다
푸른 허공이 일시에 무너지고
하늘 언저리로 나비 떼들 빨려 들어간다
뼈만 남은 가지에 살이 붙고
통통하게 물이 오른 아이의 종아리처럼
연분홍이 흘러내리는 산기슭
검은 흙 둘레가 나풀나풀 나비로 달아오른다
벌써 나무들은, 단물 뚝뚝 흐르는
푸른 여름을 손끝 가득 매달고 섰다
-임동윤 시집 ‘편자의 시간’
잘 익은 복숭아가 산자락을 가득 메우고 있는 풍경화 한 폭이다. 한 문장 한 문장 읽기만 해도 단내가 푹푹 묻어날 것 같다. 보드랍고 말랑하고 향긋한, 그 물 줄 줄 흐르는 미식을 입안 가득 베어 물고 싶다. ‘푸른 허공이 무너지고 수백 그루의 나무와 수만 마리의 나비들이 날아오르고’ ‘연분홍이 흘러내리는 산기슭’, 하지만 어느 꿈속 같은 저 도원 속에는 농부의 수고가 들어있다. 가지마다 과일이 달리고 익어가는 동안 화가가 한 폭 그림을 완성하기까지 수만 번 붓질하는 것처럼 밤낮으로 쉬지 않고 오간 손길이 있다. 그로 인해 우리의 여름은 풍성하고 곳간 가득 수확할 기쁨을 기대하는 농부 또한 행복하리라. /서정임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