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분간 휴식
/박광덕
겨울보다 맑은 하늘에서
어쩌면 이다지
차가운 눈이 내릴 수 있을까
어둠마저 하얗게 덮인 설원에
이열종대로 선을 긋노라면
철모 밑으로 고드름이 생기고
얼어붙은 군화 속을 땀방울이 흐른다
주검처럼 달라붙는 군장을 둘러멘 채
끝없이 걷는 이길
발바닥이 부르트고
귓바퀴가 잘려나도
눈 위에 찍힌 발자국이
모두 다 내 나라 내 땅으로 될 수 만 있다면
압록강과 두만강을 단숨에 건너
횐곰마냥 시베리아 만주 벌판을 싸돌아도
이 길처럼 한스럽고 어둡지는 않으련만
전달, 휴식 끝!
절명(絶命)으로 들려오는 소리에
노랗게 핀 오줌꽃을 서둘러 지우고
우리는 또
겨울 속으로 걸어간다.
영화 ‘연평해전’를 4회나 봤다. 영화산책을 쓴다는 의무감도 있었지만 남자라면 군대를 다녀와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각기 다른 사람들과 사는 모습도 그러하거니와 인내의 한계를 시험하는 일은 군 생활만큼 좋은 게 없다. 지나가는 추억보다 군에 대한 얼룩진 회상들은 그래서 언제 들어도 즐겁다 생생하게 떠오르고 포장되어 전율되는 술잔속의 대화는 그래서 깊고 야릇하다. 겨울에 이 시를 접하면 맛깔스럽겠지만 자의보다는 타의로 개인보다는 조직이 우선이었던 명령과 복종의 추억들이다. 고통과 회오 속에서 가슴깊이 말 못하는 회상을 그려보기 싫을 수 있을 것이다. 매서운 겨울, 봄, 여름, 가을 모두가 계절별 행복보다는 힘겨운 군장과 군화의 땀 냄새는 남의 일 같지 않지만 오십대 이후들의 삶과는 현실의 군과는 거리가 아주 멀기만 하다.
/박병두 시인